지난번 칼럼에서 ‘환자들의 소박한 부탁’을 들어주는 병원이야말로 최고 좋은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망률이 낮고 투약 오류가 적으며 약물 부작용을 미리 간파하는 병원, 병원 감염과 병증이 적으며 정확한 치료, 통증 완화 치료가 잘되어 있는 병원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진료 패턴의 표준화다. 똑같은 병에 대해 들쑥날쑥한 진단과 치료가 시행된다면 어떻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는가, 또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그 이유를 어떻게 알겠는가?
이제 우리 병원들도 그동안 축적한 ‘빅 데이터’들을 패턴화하여 최적의 진단 방법과 치료방법을 정리할 때가 왔다. 여기에 비용 효율 측면까지 고려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진단 치료 지침이 표준화되고 전국을 아우르는 병·의원 의료전달 체계가 스마트하게 구축된다면 환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질 좋은 진단과 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다행히 의료계에는 이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우수한 두뇌를 가진 전문가가 많다.
의료의 질 관리 선진국인 미국은 이미 75년 전에 ‘The joint Commission’이란 기구를 설립하여 꾸준히 질 평가와 환자 안전점검에 매진해 왔다.
이 기구는 현재 미국 내 1만6000개의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있는 비정부 비영리 미국법인이다. 1998년에는 국제사업부로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를 설립해 전 세계 병원으로 대상을 확장하였다.
독자들 중에도 국내의 여러 병원이 유행처럼 차례로 JCI 인증 과정을 통과했다며 국제 인증병원임을 내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형 인증기준을 우리에게 바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잘 맞지 않은 부분이 많고 재평가 등 유지 관리에도 불편함이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의료 한류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인증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국은 기존에 병원협회나 학회를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 수련, 병원 운영, 시설환경 기준 등의 평가를 시행해 오고는 있었지만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고 수작업에 의한 비효율적인 관리였던 데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의료기관 평가 기능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한국의 병원 평가 역사는 조금 다른 출발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신설 대형 사립병원들이 설립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병원의 핵심 가치(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고객 만족’이라는 개념이 병원 평가에 먼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의료를 서비스산업으로 보기 시작한 시기와 때를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백화점 업계의 1등, 자동차 업계의 1등처럼 병원계 1등이 지상을 통해 발표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고객 만족’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인 것도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병원 본연의 기능인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에 대한 관심과 평가기준 마련이 훨씬 후에 이뤄지는 바람에 한국의 병원 평가는 기형적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필자가 속한 병원은 적극적으로 한국형 의료기관 인증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평가기준 마련에 나서 한국 실정에 맞는 평가 잣대를 수립하고 이를 관할하는 한국인증평가원을 2010년 상설기구로 창설했다.
평가 기준은 ①환자 안전보장, 질 향상을 포함하는 기본 가치 체계와 ②진료 전달 체계, 환자 진료, 수술 및 마취진정 관리, 약물 관리, 환자 권리 존중 및 보호 등 환자 진료 체계 ③경영 및 조직 운영, 인적자원 관리, 감염 관리, 안전시설과 환경, 의료정보 관리 등 행정 관리 체계 ④임상 질 지표를 중심으로 한 성과 관리 체계를 점검하는 내용이다.
이제 이 인증평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적극적 실천기’에 돌입해야 할 때이다.
환자와 가족, 국민 여러분도 한국 의료기관들이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한국 의료의 질을 세계화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한국형 인증제가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우리 시스템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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