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흔들기 위한 정치적 반대… 귀에 쏙 들어오고 분노까지 자극
정파적 집단 이익 노린 반대의 毒… 국가 後進과 민생 退行을 남긴다
철도노조 파업-원격의료 반대… 새 일자리와 내수 창출도 막아
1970년 7월 7일 서울∼부산 416km를 잇는 왕복 4차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수도권과 영남공업지역, 양대 무역항인 부산항과 인천항을 연결하며 대한민국을 산업화로 이끈 대동맥이었다. 전국 1일 생활권 시대도 앞당겼다. 하지만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서자 끓어오른 반대론은 1968년 2월 첫 삽을 뜬 뒤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국민들 중에 자가용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거금을 들여 고속도로를 짓는단 말인가. 고속도로를 지어보았자 극소수 부자들이 그들의 첩이나 옆자리에 태우고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논밭을 가로질러 전국을 헤집고 다니는 유람로밖에 더 되겠느냐!” “먹을 쌀도 모자라는데 무슨 돈으로 고속도로를 내겠다고 옥토를 파헤쳐 농민들 삶의 터전마저 빼앗는단 말인가!” 귀에 쏙 들어오는, 그리고 서민들의 분노까지 끌어모으는 웅변이었다.
포항종합제철에서 이름을 바꾼 오늘의 포스코(POSCO)는 세계 굴지의 제철회사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함께 철강-자동차-전자를 잇는 대한민국 중화학공업 밸류체인의 핵심기업이다.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알기 전에 이들 기업 이름부터 외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포철이 착공되고 준공되던 1970년대 초, 제철소 건설 반대 목소리가 또 한번 나라를 뒤흔들었다. “쇳물을 뽑아낸다 한들 그것을 어디에 쓰겠다는 것이냐!”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지 몇 해나 되었다고 또 일본한테서 돈을 꾸어온단 말인가!” 대일 청구권자금을 투입하는 데 대한 국민정서까지 동원한 반대였다.
1970년 서울대에 입학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렇게 되돌아보았다. “서울대 상과대학의 변형윤 교수 등의 가르침과 지도 아래 고속도로 건설 반대, 창원중화학공업단지 반대운동을 많이 했다. 자동차공장도 안 된다고 했다. 기술종속, 시장종속 결국은 종속국가로 떨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면 명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때 경부고속도로와 포철, 중화학공단을 안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한사코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을 보면서, 그리고 “국민의 권익을 위한 파업입니까, 어려운 노동형제들을 위한 파업입니까, 철도발전을 위한 파업입니까, 철도 독점체제 유지를 위한 파업입니까”라고 김 지사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면서 지난날의 ‘잘못된 반대’에 대한 그의 회고가 떠올랐다. 김문수는 1970∼80년대 좌파적 노동관으로 무장한 현장 노동운동가였다가 사상적 전향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념 전향이 “죽음 다음으로 어렵다”고 고백했었다. 김문수 반대파는 “당신도 많은 반대시위를 해놓고 지금의 반대는 왜 안 된다는 거냐”라고 역공한다. 그러나 김문수는 노동권력의 정치성(政治性)과 반대를 위한 반대의 이기성(利己性)을 꿰뚫고 있기에 그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끈질긴 반대 역시 환경문제, 예산 우선순위 문제 등을 들이대지만 이명박 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정치공세 성격이 훨씬 강했다. 4대강 예산 22조 원이 너무 많다고 문제 삼지만 노무현 정권이 강행하고 박근혜 현 대통령이 강력히 응원한 세종행정복합도시 기본예산도 22조 원이다. 국민 편익과 안전, 국가 대계(大計) 등의 관점에서 어느 22조 원이 더 값진 것일까. 몇 년 지나 결산해보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반대나 원격의료 도입 반대 운동은 더구나 노동-의료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 국민적 포괄이익 차원의 명분은 더 약하다. 반(反)정권세력이 기득권층과 연계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공기업 효율화, 산업 선진화, 국민 편익 증대, 새로운 일자리와 내수 창출 같은 공적 이익을 저버리는 행태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반대논리는 거짓투성이로 괴담 수준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서비스시장과 일자리의 창출을 지지해야 할 일부 젊은이들조차 ‘원격진료 도입하면 맹장수술에 1500만 원 든다’는 등의 황당한 괴담을 퍼 나른다.
금세 많은 국민이 잊어버렸지만 한미 FTA 결사반대도 대한민국 ‘반대 박물관’의 한 코너를 차지하게 되었다. 반대는 매력 있고 달콤하기까지 해서 순진한 학생들이나 내용을 깊이 모르는 대중이 속기도 하고 동조하기 쉽다. 하지만 이로써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이 곧 후진(後進)이요, 민생을 시들게 만드는 퇴행(退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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