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고위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같이 일갈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한발 다가설까 하는 일각의 기대를 날려버린 후계자의 경고였다. 이후 10만 명의 주민이 강제 동원된 아리랑 공연의 카드섹션에도 이 발언은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김정일은 이듬해 9월에도 “개혁바람에 기웃거려선 안 된다. 내가 있는 한 절대로 개혁 개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못을 박았다. 그리고 혹독한 대기근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난의 행군’ 때도 빗장을 더 단단히 잠근 채 체제 고립과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악수(惡手)’로 일관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2년 7·1경제개선관리조치와 신의주행정특구 선언 등 일련의 개혁실험도 2차 북핵 사태가 터지자 폐기했다.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 준다’는 주민과의 약속을 유보한 채 절대권력은 세습정권 유지를 위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다걸기(올인)’했다.
2009년 베일에 가려 있던 젊은 후계자가 공식 등장하자 3대 세습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일말의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자본주의를 체험한 스위스 유학파이자 미국프로농구(NBA)를 좋아하는 ‘신세대 지도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세련된 스타일의 부인을 데리고 TV에 출연해 ‘철천지 원쑤’ 미제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쇼와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의 공연을 보며 환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그의 모습은 신선해 보였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아버지와 달리 공개적이고 시원시원한 그의 행보에서 북한이 대결 기조를 접고,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론마저 나왔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 2년은 김정일보다 더한 강경 철권통치의 ‘막장 드라마’로 치닫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대남 도발로 이어졌다. 이 드라마는 자신을 권좌에 앉혀준 후견인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으로 정점을 찍은 듯하다. 이번 사태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외부 세계를 향해 “내게서도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대(代)를 이은 절대권력의 섬뜩한 경고처럼 들린다.
일부에선 장성택 처형 사태가 몰고올 파장을 고민하는 기류도 엿보인다. 개혁 개방 정책을 주도한 장성택은 처형됐지만 기존 경제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며 경제개발구(특구)에 외국 기업 투자를 호소하는 북한 당국자의 부산한 움직임이 그 방증이다. 김정일 2주기 추모대회의 주석단에 장성택 측근들이 아직은 건재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성택 처형이 자칫 대결 노선 회귀와 체제위기로 비쳐 해외 투자자의 발길이 뚝 끊길까 전전긍긍하는 기색도 엿보인다.
하지만 핵을 거머쥔 채 피의 숙청을 자행하는 예측불허의 폭압(暴壓)정권에 선뜻 거금을 집어넣을 기업이 얼마나 될까.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면 정치적 안정과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가 최우선 과제임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북한이 추구하는 핵 무력과 경제건설 병진(竝進) 노선은 김정은 정권의 고육책이다. 핵을 포기하자니 정권이 위험하고, 빈사(瀕死) 지경의 경제를 내버려두자니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절대권력의 위기감이 짙게 배어난다. “핵무기 보유국들만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2013년 3월 당중앙위 전원회의 연설)”며 핵개발을 독려하는가 하면 “다신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2012년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사)”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최고권력자의 갈팡질팡하는 메시지에서 그 초조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핵과 경제 병진은 물과 기름처럼 ‘양립불가’라는 사실은 더 분명해질 것이다. 핵무기를 움켜쥐고선 인민경제도, 국가체제도 건사할 수 없다는 쓰라린 교훈은 지난 20여 년간 ‘핵도박’이 빚은 성적표로 충분히 입증됐다. 국가 재원의 고갈과 국제사회의 제재만 초래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더는 생존전략이 아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를 악화시키는 자충수일 뿐이다. 핵이냐, 경제냐 선택의 기로에 선 북한 정권이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한없이 북한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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