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수서발 노선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불법 파업을 벌이는 철도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의 어제 저녁 기자회견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조계사 잠입 이틀 만에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한 박 부위원장은 “사전 허락 없이 들어와 조계사 측에 죄송하다”면서도 “종교계가 나서 철도 민영화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 사건의 수배자들이 명동성당이나 조계사를 피난처로 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으로 공권력이 진입하는 것을 종교적 권위로 막아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명동성당도 바뀌었다. 명동성당은 2000년 한국통신 노조원의 농성으로 신자들의 불편이 가중되자 노조 측에 퇴거를 요구하고 경찰에 시설 보호를 요청했다.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주장을 펴고 방어할 수 있게 됐음에도 종교시설을 집단 이기주의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 도구로 삼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더욱이 불법 파업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법질서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시설이 언제까지나 소도(삼한시대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지역) 같은 성소(聖所)가 되어줄 수는 없다.
지금 철도노조 수배자들이 가야 할 곳은 조계사가 아니라 경찰서다. 박 부위원장이 있는 조계사 극락전에 일부 불교 신도가 찾아가 퇴거를 요구했다. 불법 파업을 계속하기 위해 사찰을 이용하지 말라는 불교 신도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 사옥에 이어 조계사를 찾아간 것도 경찰의 검거 작전을 주저하게 만들려는 전략일 것이다. 경찰의 검거 과정에서 불교계와 마찰이라도 일어난다면 철도 파업의 원군(援軍)이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떳떳하지 못한 계략이다.
민주당은 어제 경찰의 조계사 체포 작전을 중단하라며 정부 여당의 대화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집권 시절에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다. 지금은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는 안 한다고 하는데도 ‘민영화 음모’라 우기며 불법 파업을 벌이는 철도노조를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도외시하고 철도 파업에서 반사이익을 보려는 것은 집권 경험이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