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저물어간다. 올해 어떤 이유로든 ‘악몽의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는 영화들을 분야별로 꼽아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세 편. ‘토르: 다크월드’와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그리고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다. 이 세 편은 공통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모두 지난해 개봉하면서 놀라운 상상력과 완성도를 보여준 전편의 후속작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 같이 스크린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지루한 졸작이란 사실이다. 그야말로 ‘지옥의 3종 세트’다. 셋 중 굳이 나은 영화를 꼽자면 ‘토르’. 상영시간이 2시간 반 가까운 나머지 두 영화와 달리 그나마 짧은 지옥(이 영화는 112분에 불과하다)을 경험하게 하는 배려를 해주어서다. 한 줌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듯.
‘R.I.P.D.: 알.아이.피.디.’(이하 알아이피디)도 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을 가진 이 공상과학영화는 귀신이 된 경찰이 유령괴물들을 잡아들인다는 그럴듯한 내용. 게다가 ‘시간여행자의 아내’와 ‘레드’의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이 연출하고 제프 브리지스,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단언컨대 내가 올해 본 영화 중 최악이었다. 이 영화를 함께 보고나서 헤어졌다는 커플도 많다. 아, 이것은 졸작 세계의 대마왕이다. 딱 30분만 이 영화를 보라. 수능보다가 설사하는 심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엑스맨’의 대표 캐릭터인 ‘울버린’ 시리즈의 최신작 ‘더 울버린’도 ‘알아이피디’와 용호상박일 만큼 최악. 서양에서도 이미 한물간 ‘저패니스 판타지’를 울버린에다 갖다 붙인 이 무리하고 무례한 영화는 ‘울버린, 돈 버린, 울어 버린’이라는 누리꾼의 촌평이 딱 맞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카운슬러’, 왕자웨이 감독의 무협 ‘일대종사’는 용두사미란 한자성어의 뜻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거장의 졸작들. 스티브 잡스의 삶을 그렸다는 영화 ‘잡스’도 등 굽은 모습으로 둥실둥실 걸어 다니는 잡스의 모습을 애슈턴 커처가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 외엔 볼 게 하나도 없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한창 뜨고 있는 성격파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한 ‘셰임’도 내게 큰 좌절감을 안겨준 경우. 섹스중독자의 삶을 통해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제대로 집어내며 ‘결핍과 욕망’이라는 자본주의의 원죄를 진단한 이 철학적인 작품에서 미남 패스벤더는 과감하게 자신의 성기를 공개하는데….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이 진정 무슨 뜻인지 알게 되리라.
한편 올해 최악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빅3’ 영화를 꼽자면 단연 ‘웜바디스’ ‘뫼비우스’ ‘투 마더스’다. ‘웜바디스’는 ‘얼짱’ 좀비가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 ‘뫼비우스’는 아버지의 성기를 아들에게 이식한다는 SF적 상상력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투 마더스’는 소녀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두 중년 여인이 서로의 새파란 아들들과 연인이 된다는 원시공동체 스타일의 영화로, 친구의 엄마를 탐한다는 내용의 프랑스 영화 ‘인 더 하우스’를 외려 ‘착한 영화’처럼 보이게 만드는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최악의 영화 제목. 단연 할리우드 공포액션영화 ‘아브라함 링컨 vs 좀비’다. 보고 싶은 생각을 발본색원해버리는 이런 마술적인 힘을 가진 제목이 또 있을까. 마치 ‘이순신 대 달걀귀신’ ‘세종대왕 대 처녀귀신’을 연상케 하는, 인지부조화를 야기하는 이런 유치찬란한 제목을 보고 누가 극장을 찾는단 말인가.
이 영화 못지않게 황당무계한 제목으론 ‘닌자정사’와 ‘부기우기: 상위 1%의 섹스’가 있다. 일단 ‘닌자정사’는 납득이 안 된다. 주군을 지키기 위해 천장이나 병풍 뒤에 하루 24시간 숨어 오줌도 참아야 하는 닌자가 언제 짬을 내어 정사를 벌인단 말인가. 게다가 ‘부기우기’도 모자라 ‘상위 1%의 섹스’라는 부제까지 덧붙인 제목은 과유불급(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을 제대로 증명하는 경우다.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패러디한 듯한 이 제목은 ‘상위 1%’란 표현만 달면 사람들이 무조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초딩적’(초등학생적인) 착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국산 영화 ‘분노의 윤리학’과 일본 영화 ‘짚의 방패’도 제목이 실패한 경우. 일단 머리 쓰게 만드는 제목은 질색이다. 이런 제목을 내세우면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보단 안 봐버린다. 영화나 광고 같은 감성상품의 제목은 일단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들면 안 된다. 나를 요즘 악몽으로 빠뜨리는 TV 광고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글로벌이 뭔가요, 융합이 뭔가요?’ 하고 묻는 자동차 회사의 광고다. 사는 것도 복잡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왜 ‘글로벌’이니 ‘융합’이니 하는 어려운 걸 자꾸만 물어서 답을 하라고 괴롭히느냔 말이다. 글로벌? 융합? 그래, 나 무식하다. 나 모른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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