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소설가 김형경
커지는 여자들의 목소리…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알지만 남자들도 혼란스럽고 두려워
《 10월 7일자부터 시작한 기획 시리즈 ‘신(新)여성시대’가 오늘 자로 막을 내립니다.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한국 사회 여풍(女風)을 다각도로 진단해보자는 취지로 출발한 ‘신여성시대’는 그동안 직장 내 남녀 간의 소통문제, 전문직 여성들의
현주소, 청소년 성평등 의식, 해외 사례 등을 다뤘습니다. 취재팀은 점점 더 거세지는 여풍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사회가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고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렀습니다. 또 여성고용이야말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선진국 사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신여성시대’ 마지막 편으로 소설가 김형경 씨의 특별 기고를
싣습니다. 여자가 행복해야 남자가 행복하고 남자가 행복해야 여자가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행복한
새로운 시대를 위해 새해에도 더 좋은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피니언팀> 》
한 출판 평론가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통해 본 남성과 여성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1990년대 초부터 우리 사회를 강타한 베스트셀러는 대체로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었으며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남자가 가져다줄 행복을 꿈꾸며 수동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여자, 더이상 남편을 위해 아침상을 차릴 수 없다고 선언하는 여자, 욕망을 원만히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애인이 세 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남성인 그는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쏟아지던 시기에 남성의 삶을 다룬 작품은 김정현의 ‘아버지’ 단 한 편이었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더이상 남성 서사의 베스트셀러는 나오지 않았죠.”
사실 지난 20년 동안 여성들의 삶은 많이 변화했다. 재산 분할권, 상속권, 사회 진출, 성 평등 교육, 가사노동 분담 등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모두 여성들이 주도해서, 여성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거기에는 조금도 잘못된 점이 없었고, 지금도 변화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주도할 때 우리 여성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동안 경험한 삶의 부당함, 불공평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자들을 그런 불편과 불만을 준 존재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예전에 남성들이 여성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겼듯이, 이제는 여성들이 남성을 무감각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치부하곤 한다. 무엇보다 여자들은 여성이 주도하는 변화에 대해 남성이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막연히 남자들이 따라서 바뀌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꿈이다.
‘여자가 바뀐다고 해서 전체가 절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남성들은 여성들이 이루어낸 변화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워한다. 변화된 사회 구조와 남성으로서의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여성이 주도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심리학자 D. 로즈 킹마 박사가 1993년에 출간한 ‘우리가 몰랐던 남성(The Man We Never Knew)’의 한 대목이다. 서구 페미니즘 운동과 여성 권리 찾기가 30년쯤 진행된 시점에서 나온 성찰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남성들은 여성이 주도하는 변화를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간혹 사석에서 여성들의 변화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성취에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고 남자들은 점점 더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전과 같은 남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여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힘이 부친 상태가 되었다.
1990년대 미국 대중 매체에는 ‘남자 두들기기’라 불리는 현상이 있었다. 광고에서 얼간이나 바보 역할, 연인 중 차이는 역할, 분노와 폭력의 대상은 100퍼센트 남자였다. 오락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에서 익살과 조롱의 대상도 늘 남자였다. 팬시 용품에도 남자를 비하하는 문구가 인기를 끌었다. ‘남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강아지를 더 사랑하게 돼.’
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는 ‘남성 심리학자가 남자에게 말하는 남자의 생(Manhood)’에서 남자를 두들기는 풍조는 여성 소비자들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소비 주체인 여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업체가 존폐의 위기까지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대중 미디어에서 남자 캐릭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여성들이 정당하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찌질한 악당이거나,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백마 탄 왕자. 한편에서는 남자와 관계 맺는 방법으로 ‘남자 사용법’이 회자되고 있다. 남자에게 일을 시킬 때는 양자택일을 하게 하라, 바람기 있는 남자는 적은 용돈으로 관리하라 등등.
저런 이야기들은 남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주고 비상금을 몰래 챙기는 남편 마음에 불평이 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적은 용돈을 쪼개어 아내의 생일 선물까지 마련해야 하는 사람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일로 화를 내면 자기만 못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참으면서 남자들은 간접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한다. 예를 들면 아내의 부탁을 깜빡 잊는다든가, 머리나 허리가 아프다고 불평하면서 퇴근 후 텔레비전만 본다든가, 낮 동안 밖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전혀 말하지 않는다든가, 아내와 눈길 마주치기를 피하거나, 사소한 일에 벌컥 화를 내거나, 늘 따분한 기분인 채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 행동들에 담긴 메시지는 하나라고 비덜프 박사는 말한다. “나는 내가 진실로 바라는 걸 하기 두렵고, 내가 진실로 느끼는 걸 표현하기가 두려워.” 남편의 신호를 이해 못한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잔소리한다. 남자들은 아직 멀었다고, 남자들이 더 많이 변해야 한다고.
남녀 간의 갈등에 대해 더 나쁜 전망도 있다. 뉴욕대 정치사회학과 교수인 앤드루 해커 박사는 책 ‘어울리지 않는 짝: 남녀 간의 격차(Mismatch: The Growing Gulf between Women and Men)’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이 점점 자립적이 되고, 남자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됨에 따라 그들은 데이트 상대자나 배우자가 되기에 자격 미달인 남자들이 많다고 느낀다. 남녀 사이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격차가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더 많이 갈등하고 비난하며 헤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남녀가 서로 갈등하면서 은근히 비난하는 풍조는 오히려 희망적인 신호로 읽힌다. 여전히 상대 성에게 관심이 있으며 생의 동반자나 협력자로서 동행하겠다는 의지가 밑바닥에 깔린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 깊이 절망하면 상대 성에게 무심해지면서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지점으로 갈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난 20년 동안 여성이 변화를 주도해 온 것처럼 남성과 여성이 조화롭게 지내기 위한 변화도 여성이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에게는 유전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기능이 있고,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고 공감하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첫 번째 시도로서 남녀 각각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무의식에 있는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남녀 간의 갈등을 바라보면 그것은 대체로 의존성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 갈등의 핵심은 늘 상대가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했다가 좌절당했다는 호소이다. 사랑, 지지, 금전, 혹은 핸드백. 연인이나 배우자는 두 어른이 만나 친밀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남녀 모두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남편 입장을 한 번만 헤아린다면 출근하는 손길에 쓰레기봉투를 쥐여 내보낼 수 없을 것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한 번이라도 타 본다면 남편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없다. 그것은 혹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신호를 아파트 단지 전체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사석에서 그런 말을 하자 한 여성이 이렇게 답했다.
“그런 말을 공식적으로 했다가는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될 거예요.”
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가 남편 직장에서 일주일만 근무해 보면 퇴근하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수 없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지금이라도 남성들이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출판 평론가가 “남성 서사를 다룬 이야기는 2000년 이후 없었다”고 말할 때 그는 그 점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나는 남성들도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슈퍼맨이나 맥가이버가 되려고 애쓰면서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어 한다고 짐작되었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적 압박감이 해소되고, 깊은 무의식에서 치유와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했으면 싶다.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공동의 삶을 이어갈 유일하고 절대적인 조건은 상대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이해하고 돕는 마음일 것이다.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게 불안정하고 의존적이며, 쉽게 상처받고 성숙하려 애쓰는 존재이다. 여성의 권리를 찾는 변화를 여자가 주도했듯이, 남녀가 조화롭게 지내는 삶을 만드는 과제도 여자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김형경 ::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5년에 ‘문학사상’에 중편소설 ‘죽음잔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편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냈으며 최근 ‘남자를 위하여: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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