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정치 희망, 국민에게서 찾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댓글’-검찰총장 혼외자 정보유출… 스스로 신뢰도 떨어뜨린 정부
말로만 국민 앞세우며 국민의 소리에 귀 닫은 정치권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현명한 판단 내려주었던 국민
내년 지방선거서 다시 보여줄것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누군가 ‘행복한 신문 만들기’라는 제안을 하면서 언론이 긍정적인 뉴스를 더 많이 보도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도 즐거운 소식만 담은 신문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 보도가 온통 스트레스만 높여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엉뚱한 상상을 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과 생존이라는 사회 정글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상호 공존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시민적 덕성(德性)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경찰이 파업을 하자 여기저기서 약탈이 자행되고 치안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맞서 주민들은 총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미국도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무질서와 혼란을 틈탄 약탈 장면을 보면 과연 그곳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어떠한가. 현대사에서 정부에 대해 시민들의 강한 저항이 있었던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국가의 치안력이 한계에 부닥친 경우에도 은행은 물론이고 동네 구멍가게 하나도 약탈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바로 이런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시민의식의 근저를 보여준다.

무질서를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사적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공동체 의식인 것이다. 한국인의 성숙한 민주의식은 진행 중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답변이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사건에서 보듯이 상호 양립하기 어려운 이념적 주장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상호 비판이 이루어지고 갈등이 관리되고 있다.

요즘 논쟁 대상인 복지에 대한 국민의식도 놀라울 정도로 높다. 국민은 결코 세금 부담 없는 복지서비스를 기대하고 있지 않다.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복지 보장을 위해서는 개인적 부담을 더 할 용의가 있다는 답변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국민은 자기 이익에 급급한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라 국가 재정의 건전성 문제를 동시에 고민하는 세련됨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갈등이 상호 이해와 타협을 통해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법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에 대해 사법의 우월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법원의 권위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국민의 본질적 신뢰는 높다. 정치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우리는 택시를 타면 절반가량은 정치 이야기를 대화의 주제로 삼곤 한다. 택시운전사와 손님이 모두 정치권을 싸잡아 욕하지만 그래도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무한 애정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정치가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이라면 역사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원칙과 타협 사이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 정치권의 갈등이 자신들의 정치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여야를 막론하고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경구가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가 아닐까 싶다. 세상 누구에게나 배울 바가 있으며, 내가 보기엔 당연히 내가 옳지만 세상을 달리 보는 누군가에게는 다른 것이 옳게 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내년 정치권의 방향은 의외로 간단하다. 말로만 국민을 앞세우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지금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진중함의 결여이다. 국회의원들의 직설적 발언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데 골몰하여 고만고만한 수준의 반발과 대응이 결과물로 남을 따름이다. 정부 역시 신중함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받고 있는 채모 군의 개인정보 유출 건의 경우에도 정부 발표가 번복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 정부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평가를 받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현명함은 다시 확인될 것이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지방선거#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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