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불행과 무자비한 七十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구 내주었습니다
서울 성북동에서 가까이 살던 시인과 화가는 이웃사촌이자 서로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가진 벗이었다. 1963년, 쉰 살 나이에 화가는 새로운 도전을 찾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낯선 땅에서 외롭고 궁핍한 일상에 지쳐가던 어느 날 그는 절친했던 시인의 가슴 울리는 작품을 접했다. 화가는 자신의 삶을 스쳐간 숱한 인연을 떠올리며 붓을 들었고 커다란 캔버스에 셀 수 없이 많은 점을 하나하나 그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산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가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라는 추상회화로 새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지금 서울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수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는 이 그림처럼 화가를 대표하는 점화(點畵), 무수한 점을 찍은 그림들이 선보여지고 있다.
김광섭 시인의 ‘인생’은 우주와 별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한다. 탐욕에 사로잡혀 무자비하게 남을 짓밟는 인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열린 희수 기념 출판기념회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거다. 사람이 잠깐의 목숨을 받아 산다는 것이 신비다. 릴케의 시에 보면 ‘죽음과 삶 어느 쪽이 진짜냐, 죽음이 진짜다. 삶은 죽음의 바다에 이르는 파동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인생은 신비스러운 거다.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연말이면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 뿐,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치지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거라는 말로 다가왔다. 별로 한 일 없이 거대한 우주를 선물로 받은 우리들이 탄식 대신 긍정으로 한 해를 기쁜 마음으로 마감할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우리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대통령만 단임제가 아니라 우리 삶도 단임제다. 남을 향한 증오와 분노로 인생 단임제의 레임덕을 앞당기지 말고 새해는 나 자신과 세상을 여유 있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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