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감독 “萬手 비법? 버스 이동중에도 잠 안자고 전술 구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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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8>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

2013년이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50)은 그 어느 때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4월 모비스를 플레이오프 정상에 이끈 뒤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7월 한국 농구에 16년 만의 월드컵 티켓을 안겼다. 10월 개막한 이번 시즌 모비스는 LG, SK와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영광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는 유 감독을 크리스마스인 25일 경기 용인시 모비스 체육관에서 만났다. 이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가족, 연인을 찾아 일제히 외박을 나갔다. 한기가 도는 코트에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2000년 부인과 1남 1녀를 모두 미국으로 떠나보낸 ‘기러기 감독’만이 숙소를 지키다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 팀워크는 밥상머리에서

유 감독의 별명은 ‘만수(萬手)’. 전략이 많다는 뜻. 그렇다고 복잡하지는 않다. 단순명료하게 승부의 맥을 꼭 짚는다. 상대 약점은 철저하게 파고든다. 유 감독은 지방 경기 이동을 위해 몇 시간씩 버스를 탈 때 좀처럼 자는 법이 없다. 골똘히 전술을 구상한다. 버스가 ‘달리는 연구실’인 셈이다.

선수를 볼 때는 됨됨이를 중시한다. “하나가 물을 흐리면 전체가 탁해진다. 감독이 단속해야 할 부분이다.” 모비스 선수단은 늘 아침 식사를 같이한다. 외국인선수라고 예외는 없다. “컨디션을 저해하는 늦잠을 막을 수 있다. 하루를 같이 시작하며 단합심을 키운다.”

약속 시간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켜야 한다. 성장 과정이 다르고 개인 성향이 강한 혼혈(한국 엄마와 미국인 아버지) 선수 문태영도 모비스 입단 후 달라졌다. “태영이가 몇 차례 지각을 해 훈련에서 배제시켰다. 미국 전지훈련 가서 또 늦기에 ‘야 이 ××야 짐 싸서 가. 너랑은 끝’이라고 호통을 쳤다. 다음 날 싹싹 빌더라. (선수들이) 거들먹거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유 감독은 옥석을 잘 가린다. 함지훈은 신인 드래프트 10순위 출신. 최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신인 이대성은 11순위로 지명했다. 김효범, 박구영, 박종천 등은 유 감독의 지도 아래 슈터로 거듭났다. 다른 팀에서 버리다시피 한 선수들을 알토란처럼 길러낸 셈이다. 선수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평가가 쏟아지는 이유다. 요행은 아니다. 세밀한 사전 정보와 자신감의 산물이다. “확실한 장점 하나만 키우면 된다. 못하는 걸 굳이 요구할 필요는 없다. 수비는 재능과 상관없다. 반복 훈련은 필수다.” 유재학 농구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영웅을 지향한다. 그래서 농구 기자단이 모비스 선수를 놓고 최우수선수 같은 개인상 투표를 할 때 늘 어렵게 한다.

○ 멀고 험했던 장수(長壽)의 길


유 감독을 처음 취재한 건 그가 대우증권 코치였을 때인 1996년이었다. 17년 전 유치원생이던 유 감독의 장남은 6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를 졸업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은 훌쩍 컸어도 유 감독은 한결같다. 1997년 프로 출범 후 69명의 감독과 수백 명의 코치가 명멸했지만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코트를 지키고 있는 지도자는 그가 유일하다. 최초로 400승을 돌파하기도 한 유 감독은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1998년 3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감독이 됐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는 못했으리라.

위기도 많았다. 몸담던 농구단이 매각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우증권→신세기→SK를 거쳐 전자랜드로 넘어갔다. 신세기 감독이던 2000년 팀이 최하위에 처져 사표를 내려고까지 했다. 2004년 모비스로 옮겨 2006년 정규리그 1위에 올랐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4전 전패로 패했다. 2007년 열악한 전력에도 통합 우승을 이룬 뒤 비로소 그의 지도력은 꽃을 피웠다. 올해로 모비스에서만 10시즌째 지도하며 3차례 우승을 엮어냈다. “감독의 열정과 적재적소의 선수, 프런트 지원의 3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신뢰와 소통도 중요하다. 우승하다 보면 슬슬 배가 불러지고 절실함이 사라진다.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 농구 지도자는 천직(天職)

경복고-연세대-기아자동차에서 줄곧 최고 스타였던 유 감독은 무릎 부상으로 27세 때 일찍이 유니폼을 벗었다. 아쉬운 마감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을까. 은퇴 후 바로 연세대 코치로 일했던 경험은 큰 자산이 됐다. “많은 걸 배웠다. 스타 출신이니 대접받을 줄 알았던 건 큰 착각이었다. 좋은 선수 뽑기 위해 고교 감독 코치들의 가방도 들어주고, 식사 후 먼저 나와 신발도 (신기 편하게) 돌려 놔 줬다. 유망주 스카우트를 위해 전국을 돌다 며칠 밤을 새우며 추위에 떨었다.” 그러면서 스타 의식을 버리고 선수 관리와 코칭에 대한 노하우를 쌓게 됐다.

유 감독은 내년 스페인 월드컵과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을 공산이 크다. 아시아경기에서는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노리고 있기에 감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농구연맹은 벌써부터 유 감독을 최적임자로 지목해 규정까지 바꾸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참 부담스럽다. 아직 뭐라고 확답을 줄 입장은 아니다.” 망설이긴 해도 결국 그는 OK 할 것 같다. 누구보다 한국 농구에 대한 애정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가을 모비스가 출전한 중국 아시아클럽대회에 취재 간 적이 있다. 유 감독은 50도가 넘는 중국 백주를 들이켜며 한국 농구의 현주소와 경쟁국인 중국, 이란 등의 전력을 안주 삼아 열변을 토했다. “어린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큰 문제다. 기본기는 건너뛰고 성적에만 매달린다.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젠가 감독을 관두면 돌아다니며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싶다. 선수 때부터 농구 배우는 재미가 워낙 컸다. 나 역시 그런 즐거움을 주고 싶다.”

PS: 이날 유 감독과의 대화는 근처 냉면집으로 옮겨 5시간 넘게 이어졌다. ‘농구’ 얘기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유재학 감독의 새해도 여전히 바쁠 것만 같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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