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면 너는 민요처럼 단순해진다. 반복하면 마음이 놓인다. 만만해 보이고 알 것 같고 반복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법칙이 생길 것 같다. 게임처럼 너에게도 언덕에게도. 반복하다 보면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복하면 리듬이 생긴다. 리듬은 기억하기 좋고 연약한 선을 고정시킨다. 고개와 어깨에 잘 붙고 발바닥과 손바닥과 친하고 리듬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리듬은 주술 같고 리듬이 된 것은 일이 어렵기 때문인데 리듬으로 두려움이 줄어들고 낯섦도 줄어든다. 리듬은 폭력과 가깝고 노래와도 가까워서 리듬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마치 형태가 있다는 듯이 손으로 부드럽게 쥐어서 너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에게서 건네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누구인가? 친하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낯설어진 너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는 너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너는? ‘너’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세상’이나 ‘삶’ 전반일 수도 있다. 화자는 ‘알 수 없는 너’를 극복하기 위해 ‘너를 반복한다’. ‘너’의 행태를 복기한다. 다 올라왔다고 생각했던 언덕을 오르고 다시 오른다. 오묘하지도 않고 그저 피로하고 지겨울 뿐인 반복. 그런데 거기서 리듬이 생기누나. 그 ‘리듬으로 두려움이 줄어들고/낯섦도 줄어든다’. 화자를 슬프고 불안하게 만든 삶의 완력이 잊혀지고, 그 완력에 저항하느라 화자의 몸에 익은 리듬이 노래로 남는다. 예민하고 심약한 화자가 삶의 언덕들을 이윽고 ‘폭력과 가까운’ 리듬으로 내딛는 경지가 섬세하고 힘찬 결기로 그려져 있다.
새해 첫날이다. 재미 삼아서든 진지하게든 토정비결을 보는 이가 많을 테다. 살아보고 살아봐도 알 수 없는 삶이어라. 토정비결에 무한 반복되는 삶의 유형과 법칙이 어쩌면 담겨 있다고 믿고, 그 흐름에 의탁해 불안을 다스리는 사람들. 아, 그러나 삶은 반복이 아니어라. ‘개인의 전설’이어라. 평탄하든 울퉁불퉁하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 노래’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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