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먹을 것도 없는데 허리띠만 조르라는 김정은의 신년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일 03시 03분


북한 김정은이 어제 신년사에서 “북남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칠 전까지 “전쟁은 광고를 하지 않는다”며 호전성을 보이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새해를 맞아 북한 지도자가 남북 관계를 대결에서 대화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북한 지도자가 어수선한 내부 상황을 추스르기 위해 남한을 상대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은 남북한 사이의 긴장 원인을 남한 탓으로 돌리는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거론한 ‘백해무익한 비방 중상’과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은 바로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끊임없이 시도한 전술이다. 신년사에 나오는 ‘종북 소동을 벌이지 말라’는 주장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겨냥한 것이지만 북한과 무관한 사건이라면 김정은이 함부로 간섭할 일이 아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생전에 했던 대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년사를 직접 읽었다. 1만 자가 넘는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했으나 여전히 북한 외부에 ‘남북 평화를 원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북한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변화다.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정세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전형적인 책임 회피다. 북한이 수수방관할 수 없어 군사력으로 자주권과 세습 독재체제를 지켜나가겠다는 핑계 같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핵은 자위용이라는 억지 논리의 연장선 위에 있다.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이 비교적 유화적인 내용의 신년사를 발표한 지 1개월 11일 만에 3차 핵실험 도발에 나서 더욱 심각한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를 원한다면 핵 포기 의사부터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김정은이 석탄과 전력, 농업 부문의 역량 강화를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 과거 김정일 시대와 다른 면이다. 그만큼 전력난과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신년사는 한편으로 ‘절약이 곧 생산이며 애국심의 발현’이라고 강조했지만 주민들이 먹을 것도 없는데 허리띠만 조르라고 요구하는 북한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북한#김정은#신년사#상투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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