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별아는 ‘가미가제 독고다이’라는 소설을 썼다.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어 발음을 들리는 대로 쓴 것이다. 작가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훈련 과정을 묘사하다가 이런 말을 내뱉는다. “쪽팔림은 수컷들의 숨이 붙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쪽팔려서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쪽팔릴까 봐 벌벌 떨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인류 역사 속의 수많은 수컷들에게 위로와 동정을.”
▷돌아올 기름도 채우지 않고 자살 비행을 하는 가미카제 특공대는 현실에서는 누구에게나 거부되지만 상상 속에서는 집요하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일본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를 다룬 ‘영원의 제로’라는 소설이 450만 부 이상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세밑에 도쿄 롯폰기에서 영화를 본 뒤 기자들에게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극우 정치인 아베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한 해 마무리다.
▷영화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누구나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며 기꺼이 자폭 공습에 뛰어들었다는 상투적 설정을 일단 거부한다. 주인공이 뛰어난 비행기술을 익히는 것은 오로지 살아 돌아가겠다는 열망 때문이다. 생환에 집착하는 그를 동료들은 비겁한 놈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서 매번 살아 돌아온다. 천재적 비행기술 덕분에 특공대 교관으로 살아남았던 그도 그러나 전쟁 막바지에 결국 특공대에 편입돼 희생되고 만다.
▷영화는 충분히 수컷이 되지 못한 한 특공대원을 통해 전쟁의 광기에 희생되는 인간을 그린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는 인간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일본인이 일으켰고, 그래서 일본인이 직시해야 할 전쟁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회피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원작 소설을 쓴 햐쿠타 나오키는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고 평화헌법도 부정한다. 아베 총리는 햐쿠타의 열렬한 팬이다. 정치의 아베는 문학의 햐쿠타를, 문학의 햐쿠타는 정치의 아베를 마케팅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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