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못난이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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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의 한 과수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수확한 배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깨끗한 백지로 싸서 고급스러운 포장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상자에 넣고 있었다. 하나는 백화점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시장으로 나갈 것이라 했다.

“양쪽의 배가 똑같아 보이는데 뭐가 다른가요?”

과수원 주인은 배의 표면에 난 작은 점을 보여주었다. 크기와 당도 등은 같지만 표면에 얼룩이나 검은 점 같은 게 있으면 B급으로 분류된다는 설명이다. 껍질을 깎고 나면 마찬가지인데 이 작은 차이가 운명을 바꾼다. 일단 잘 포장된 배는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대접받으며 고가로 팔리고, 신문지에 둘둘 싸인 배는 싸구려 종이상자에 담겨 시장에서 거래된다. 내용은 같은데 가격 차이는 배가 넘는다.

며칠 전 신문에서 ‘못난이 과일이 황금알’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읽었다. 흠집 난 농산물을 실질적인 구매자에게 연결하여 생산자와 구매자가 모두 이익을 보게 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했다. 아마 그들도 과수원에서 내가 느꼈던 안타까움을 느낀 모양이다. 껍질을 벗기면 내용은 마찬가지라는 데 착안한 그들은 그것으로 생과일주스를 만들어 반값에 팔았다고 한다. 당연히 반응이 좋아서 못난이 과일이 황금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외모지상주의가 과일에 국한된 건 아니다. 지하철에도 버스 옆구리에도 사람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성형을 유혹하는 광고가 성업 중이다. 성형수술을 한 것이 죄가 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스타들의 성형 고백이 뉴스가 된다. 성형하지 않아도 원래 예쁜 그들인데, 마치 성형을 하면 그렇게 예뻐질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온통 외모가 능사인 듯한 세상에서 못난이에게 주목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겉모습에 쏠리지 않고 내용에 초점을 맞춘 발상이 신선해서다. 사실 외모가 좋아서 나쁠 건 없지만 외모만 강조하는 건 너무 표피적이다. 말 그대로 껍질일 뿐이니까 말이다.

새해에는 이 젊은이들처럼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떨까? 못난이를 황금알로 바꾸었듯이 의외로 답이 보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보물찾기를 할 때 보물은 늘 상식을 벗어난 곳에 숨어 있었다. 가치의 기준을 바꾸면 세상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게 될지 모른다.

윤세영 수필가
#못난이 과일#농산물#생산자#구매자#외모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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