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부형권]당신이 잠 못 든 사이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부형권 정치부 차장
부형권 정치부 차장
사회부 주니어 기자 시절 서울 강북지역 유흥가의 불법 영업을 취재했다. 경기불황으로 장사가 안되자 ‘퇴폐 쇼’로 손님을 유혹한다는 내용. 행정기관의 단속이 이어졌다. 적발된 업소는 영업정지(1∼2개월)를 당했다. 취재를 지휘했던 선배 기자가 한 업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영업정지만 끝나면 손님이 2, 3배 몰려오니까요.”

고발이 홍보가 된 셈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매년 비판하는 ‘쪽지예산’도 비슷하다. 언론은 “○○○ 의원, 지역구에 다리 세우려고 나라살림을 누더기 만들지 말라”고 쓴다. 그 비판기사는 의정보고서에 늘 ‘자랑스럽게’ 인용된다. 한 의원은 최근 ‘욕먹을 각오로, 내 이름으로 넣은 쪽지예산’을 스스로 공개했다. 이쯤 되면 기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치부 윤완준 기자의 ‘올빼미 장관에 외교부는 파김치’ 기사(2013년 6월 21일자 A8면)를 게재할 때도 살짝 불안했다. ‘이 비판도 홍보가 될까.’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밤만 새우는 올빼미가 아닌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를 이끄는 지혜의 올빼미가 돼달라’는 날 선 주문이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광화문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헌신적으로 일해 주신 여러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윤 장관의 2014년도 시무식 인사말씀)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은 바로 윤 장관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루 3시간 이상 안 자는 워커홀릭(일중독자), 월화수목금금금은 기본, 밤새 주재하는 5∼6시간짜리 마라톤 회의. 외교부의 한 고위간부는 “동아일보 보도에 ‘외교관들 더 고생해야 한다’는 국민 반응도 적지 않아 놀랐다”고 전했다. 윤 장관이 여러 모로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원조 올빼미는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다. 그는 “강경 매파와 온건 비둘기파의 장점만 취해 현명한 올빼미파가 되겠다”고 말해왔다. 그 ‘올빼미 전략’ ‘지혜의 비전’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 냉소적 풍자만 돌아다닌다. “두 올빼미의 차이가 뭔지 알아? 한 올빼미(김장수)는 야전침대에서라도 자는데, 다른 올빼미(윤병세)는 심야회의 하느라 잠을 아예 안 자.”

오해 없기 바란다. 청와대나 외교부 직원들을 ‘칼퇴근’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칼퇴근이 뭔지 모르는 기자들이 그런 주문을 할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국정 책임자들은 자나 깨나 국정만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단 ‘내가 지금 국정을 책임지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가’를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관이 월화수목금금금 일할 때 눈치 때문에 주말 근무자만 늘어나고 있지 않은지, 밤새 회의를 한 간부들이 낮에는 생산적으로 일하는지, 장관이 자료의 토씨 하나까지 챙길 때 직원들의 책임감은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 또 왜 잘나가는 글로벌기업들은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의 몸이 아닌,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의 머리를 원하는지, 그런 창의성과 자발성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윤 장관은 시무식에서 “경제 활성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외교부도 경제부처라는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기본적 경제 마인드부터 충만해야 한다.

잠 못 든 사이 심야회의를 얻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가.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
#쪽지예산#비판기사#홍보#윤병세#김장수#심야회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