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건강보험 재정, 이참에 뿌리를 건드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건강보험제도란 문자 그대로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액의 진료비가 들어 가계가 파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들이 평소에 낸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 운영하다가 병원 갈 일이 생길 경우 혜택을 주는 사회보장제도이다. 그동안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한 없이 최상급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자랑거리가 될 만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건강보험재정만 가지고는 건강보험제도의 고유한 목적을 100%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향후 초고령화사회의 대두로 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지금 우리는 재정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식 복지 확대 추세와 어렵사리 꾸려오고 있었던 병원업계의 경영이 과연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 등이 팽배해 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부와 병원업계는 물론 환자와 가족에게까지 솔직하게 알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현 보험제도하에서 기본적으로 재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에서 ‘보장률’이란 용어가 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만 가지고 환자가 추가 부담금을 전혀 내지 않고 진단과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다면 문자 그대로 보장률이 100%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 건강보험시스템에서는 대략 62∼63%다. 나머지 37∼38%의 비용은 누군가가 부담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병원이 떠안고 갈 여유만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저수가 정책으로 원가 보전이 안 되는 구조 때문에 병원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그동안 병원은 ‘돈벌이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주차장, 장례식장, 편의점 등 이른바 비고유 목적 사업을 하면서까지 겨우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허덕여 왔다. 앞으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나 일부 적자 보전 기능을 하던 3대 비급여 존폐 위기 등 수많은 경영 악화 요인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병원 입장에서 필자의 전문 분야인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을 예로 들어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써 이해를 같이하고 싶다. ‘팔로 사징(Fallot’s Tetralogy)’이란 중간 난도의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소년을 치료한 적이 있는데 이 소년은 2012년 3월 28일부터 2013년 9월 17일까지 약 19개월간 진단, 수술, 수술 후 관리, 외래추적의 과정을 거쳤다. 입원은 5회, 외래는 총 48회 방문하였다.

이 과정에서 든 총 의료비용은 7527만9901원이었는데 병원으로 들어온 총 진료비는 건강보험재정으로부터 보상된 4598만765원(70.4%)과 환자가 직접 부담한 1910만8750원(29.2%)의 합인 6508만9515원이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1000만 원가량 손해였다. 병원은 결국 주차장이나 장례식장에서 손해를 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60%대가 넘는다고 하지만 병이 큰 경우에는 환자들의 부담도 막대하다. 서울대병원에서 진료한 13세 급성백혈병 남자 청소년의 경우 2012년 2월 7일부터 10월 17일까지 8개월간 치료를 받으면서 입원 7회, 외래를 82회 방문했다. 총 의료비는 2억5975만2258원이 들었는데 그중 병원에 들어온 진료비는 2억1280만3574원(역시 병원은 20.1% 손해)이었으며 이 중 총 진료비의 72.9%는 건강보험재정에서 부담했지만 환자 측은 57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부담해야 했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보험료를 꾸준히 올려 2011년 기준으로 보장률을 63%까지 만들었다. 특히 고액진료비 상위 30개의 질병에 대해서는 75.5%까지 올려놓았다. 건강보험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기 등 고가 의료장비 수가 삭감도 해 보고, 약가(藥價)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해 보기도 했으며 선택진료 의사의 범위를 축소하는 선택진료비 축소 노력도 해보았다. 포괄수가제도 도입했다. 정부로서는 보장률 상승과 건보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온 셈이다.

하지만 현재 재정 범위 안에서는 선진국보다 나은 의료보장제도를 유지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증가하는 건보재정 요구의 상승을 감당할 길이 없고 그 결과 보장률 상승이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은 뻔하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앞서 언급했듯 너무나 훌륭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환자와 가족은 물론 국민과 병원업계,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놓고 솔직한 토론과 공감대 형성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건강보험제도#진료비#의료서비스#보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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