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휴가를 떠나기 전날인 지난해 12월 20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 연단에 섰다. 49석의 기자실 좌석은 빈틈없이 빼곡했고 자리를 잡지 못해 서 있는 기자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었다. 송년 기자회견 1시간 동안 오바마는 모두(冒頭) 발언 7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 썼다.
▷기자회견은 사전 각본 없이 진행된다. 대통령 연설 때 많이 쓰는 프롬프터도 없다. 하이라이트는 일문일답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사안을 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오바마는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으로부터 당일 질문할 기자 명단 10명을 전달받아 차례로 질문 기회를 줬다. 질문은 까칠했다. 추락하는 대통령 지지율,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안보국(NSA) 도·감청 의혹, 표류하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부채한도를 둘러싼 의회와의 대립까지 하나같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질문들이다.
▷기자들의 창과 대통령의 방패는 양보 없는 한판 승부다. 오바마가 ‘착한 기자’일 것이라 여기고 첫 질문권을 줬다는 AP통신 여기자 줄리 페이스는 “올해가 대통령에겐 사상 최악의 한 해 아닌가요”라는 당돌한 질문으로 초장부터 대통령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답변이 주제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면 중간에 끊고 들어가 다시 묻는 고약한 기자도 여럿이다. 험악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한 여기자가 대통령의 새해 다짐을 물었다. 오바마가 “백악관 기자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나의 새해 결심”이라고 말하자 비로소 폭소가 터져나왔다.
▷3억 명의 미국인이 오바마의 첫 임기 4년간 대통령 기자회견을 78번 TV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자신이 대통령한테 따져 묻는 것 같은 대리체험을 했다. 대통령은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 사전 준비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박진감이 넘친다. 취임 열 달 만의 첫 기자회견, 그것도 미리 질문을 다 알려주고 하는 티가 역력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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