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펭귄은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동물이다. 지난해 5월 영국과 중국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펭귄이 하늘을 나는 대신에 헤엄을 치는 데 날개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펭귄과 생김새가 비슷하고 서식지가 가까우며 자맥질도 할 수 있는 바다오리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잠수에 능한 바다오리의 비행능력은 다른 새들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펭귄이 오래전 날기와 잠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진화의 기로에 직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황제펭귄의 경우 물속에 한번 뛰어들면 평균 5.7분간 숨을 참고 237번 날개를 퍼덕이며 먹잇감을 잡는다. 하늘을 나는 능력을 포기한 대신에 생존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결정적인 진화론적 선택을 한 셈이다.
‘3·4·7 비전(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의 목표 달성)’이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의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와 비슷한 선택을 봤다. 80분의 기자회견 중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51차례 등장한 ‘경제’. 지난해까지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만큼이나 무게를 뒀던 ‘복지’는 단 2번만 나왔고 ‘경제민주화’는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특히 “3만 달러 시대를 넘어 4만 달러를 바라보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은 사전에 청와대 경제팀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부처를 출입한 경험에 비춰 볼 때 경제 관료의 계산기에서 ‘4만 달러’같이 담대한 숫자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매년 4%씩 성장해도 지난해 2만5000달러 정도로 추산되는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데는 5년, 4만 달러로 높이려면 12년 정도가 걸린다. 지난해 성장률이 2.8%였고 잠재 성장률도 3%대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 등으로 환율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 한 3만 달러도 임기 내에 달성하기 대단히 어려운 목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4만 달러 표현을 고집한 의도는 지난해 12월 제5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했던 얘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에 ‘수출 100억 불, 1인 개인소득 1000불, 마이카 시대’를 70년에 연다고 했을 때 세상에 3대 웃음거리가 됐대요. 너무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고…. 그런데 국민의 저력이 그것을 이뤄냈거든요.”
이렇게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청사진과 같은 도전적 목표로 ‘4만 달러’를 내놨다. 이 목표와 함께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이 나온 배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국 독일 일본처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인구 8000만 명인 ‘40-80 클럽’ 국가가 되려면 통일은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개인적으론 박 대통령의 4만 달러 발언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달 탐사 계획 발표를 떠올렸다. “미국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킬 것입니다.” 1961년 5월 케네디의 이 발표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열패감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지향점을 제공했다.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승무원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4만 달러 비전은 ‘박근혜표 달 착륙 프로젝트’나 다름없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그중 1년이 이미 흘러갔다. 성장과 복지 대선 공약을 동시에 달성하고, 투자 및 내수를 활성화하면서 경제민주화도 챙기기에 남은 임기가 너무 짧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다른 한쪽을 포기한 대통령의 결정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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