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변신을 꿈꾸지 않는 로봇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9일 03시 00분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어린이는 성장을 꿈꾸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변신이다. 어른들이 기대하듯 서서히 성장하는 게 아니라, 동화 주인공처럼 한순간에 변신하는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재투성이 아가씨가 신데렐라로 현신하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어린이들은 가슴 깊숙이 극적인 변신의 욕망을 키운다.

닮고 싶은 대상은 남녀가 다르다. 남자 어린이는 사자의 발톱과 호랑이의 어금니와 치타의 다리와 독수리의 날개가 필요하지만, 여자 어린이는 장미의 꽃잎과 백합의 향기와 아까시나무의 꿀과 담쟁이의 덩굴손을 탐낸다. 그 뿌리가 원시시대의 토테미즘(totemism)으로 거슬러 닿을까. 변신하는 방법도 다르다. 남자 어린이는 로봇을 만지작거리며, 여자 어린이는 요정을 상상하며 변신을 꿈꾼다. 남자 어린이는 과학의 힘으로, 여자 어린이는 마법의 위력으로 변신하려 한다. 남자 어린이는 악당을 물리치는 목적지향적인 놀이를 통해, 여자 어린이는 소꿉장난 같은 관계지향적인 놀이를 통해 변신을 추구한다.

어린이는 주로 동화, 만화, 영화, 게임을 통해 변신의 욕망을 포착하고, 옷이나 장난감을 이용하여 변신을 시도한다. 그래서 성공한 만화나 게임의 캐릭터가 의류나 완구 시장을 장악하기 마련이다. 완구업체는 뜰 것 같은 캐릭터를 선점하기 위해 웃돈을 주고라도 사용권을 확보하려 든다.

그런데 최근 완구업체가 자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기획한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장난감 시장에서 획기적인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영실업이 제작하는 변신로봇 또봇과 여자인형 쥬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어느 순간 로봇으로 변신하는 게 또봇이고, 곧 다니게 될 학교를 무대로 옷이나 장식품을 바꿔 걸치고 요정으로 등장하는 게 쥬쥬다.

또봇과 쥬쥬는 여러 어린이방송에서 각각 ‘변신자동차 또봇’과 ‘시크릿 쥬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캐릭터를 알린 뒤 꾸준히 시장을 키워왔다. 특히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상점에서 구하기도 어려울 만큼 인기를 끌어 판매량에서 최고의 강자인 레고까지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매출만 보더라도 또봇은 전년 대비 30% 성장했고, 쥬쥬는 60% 늘어났다.

어른은 어릴 때 무수히 변신을 꿈꿨지만 성장만 했을 뿐 변신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변신에 실패한 어른은 하나같이 쇼핑을 통해 변신 욕구를 보상받으려 든다. 변신하지 못해 초라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다. 쇼핑 목록은 어린이와 같다. 남자는 자동차, 컴퓨터, 카메라처럼 여전히 ‘악당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장치’이고, 여자는 의류, 핸드백, 액세서리처럼 ‘요정이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변신하는 방법도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남자 어린이는 조종간으로 로봇을 조작하고, 여자 어린이는 요술봉을 휘둘러 스스로 요정이 된다. 남자는 멀리서도 시동을 걸 수 있고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는 첨단 시스템을 갖춘 자동차를 몰고 싶어 하고, 여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고 어디서나 신기하게 나를 알아보고 할인이나 포인트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를 긁어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첨단 운전대를 붙들고 ‘악당을 물리치러 가는 동안’ 날랜 운전솜씨로 빵빵거리며 짜증을 내고, 쓸수록 혜택이 많다는 신용카드를 요술봉처럼 ‘뽕뿅’ 휘두르며 거들먹거리는 동안 점점 속물로 변해 간다. 변신하지 못하는 고물 로봇이 되는 걸까, 백조가 되기를 포기했으니 미운 오리로 남겠다는 걸까. 로봇을 보고 다시 변신을 꿈꿀 시점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자체 캐릭터#애니메이션#장난감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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