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성장 늪 탈출하려면 더이상 ‘남 따라하기’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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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릴레이 특별기고/최창희]<5·끝>한국경제 퀀텀 점프(대도약)를 위한 제언

최창희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최창희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지난해를 휩쓴 커다란 이슈는 ‘글로벌 경제 3대 축인 미국, 유럽, 중국 경제의 동시다발적 감속’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제한 재정 투입을 해도 도무지 회복되지 않는 미국 경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게 침체된 유로존 경제는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할 선진국 시장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는 몇 년간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신흥국 경제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줬다. 글로벌 경제 전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속되는 경제 침체 속에서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리더십 공백 상태에다 각국에서 일어난 점거 운동(Occupy Movement)까지 겹쳤다. 세계 경제 회복은 요원한 듯했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낙관론보다 자본주의 한계를 주장하는 비관론이 팽배한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 ‘회복세’ 미국, 시험대에 선 ‘아베노믹스’

그렇다면 2014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먼저 완제품 수출 최대 시장인 미국을 살펴보자. 미국 경제는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금융정책 추진 속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원이었던 주택버블 문제가 점차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적완화 종료가 가져올 장기금리 상승 압력, 그리고 그 결과 신흥국에 미칠 파장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또한 올해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와 현 정권 지지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정책 리더십 문제는 미국 시장의 원활한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직접적 수출 경쟁 상대인 일본 경제를 보자.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활력을 얻고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최초로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엔화가치 하락에 탄력을 받은 기업들의 실적 개선, 투자 의욕이 커지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한 번에 되찾으려 하는 것 같은 기세다. 일단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것이 하나의 성공이다.

과거 1년간의 성과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베노믹스 핵심 전략인 성장전략의 성패에 달려 있다. 성장전략의 목표는 일본 내 설비투자를 확대해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포함한 소득환경을 안정적으로 개선해 일본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금융완화로 만들어낸 기대심리는 머지않아 실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정책 추진에 대한 뒷받침 또한 탄탄하다. 하지만 5분기 연속되고 있는 무역적자와 1000조 엔을 넘는 정부 부채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2014년 4월과 2015년 10월에 2단계로 나누어 진행될 예정인 소비세 증세가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 경제구조 개혁 중인 중국

한편 글로벌 생산거점인 중국 경제는 거시경제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을 선포했다. 매년 7%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경제구조 개혁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급속성장에 따른 각종 이슈들을 정면 돌파하려면 추가적인 성장을 다소 희생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용이한 목표가 아님은 틀림없다. 특히 세계 경제가 향후 몇 년간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내수 진작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 중심 성장 또한 불확실하다. 게다가 이미 2012년부터 시작된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개혁과 성장의 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최악의 성장률, 저성장시대 마주한 한국

시선을 한국 국내 상황으로 돌려보자.

작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결국 3%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1년 3.6% 이후 3년 연속 2∼3%대라는 역사상 초유의 저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10년 단위로 연평균 경제성장률 추이를 돌이켜 보면, 1980년대 8.6%, 1990년대 6.7%, 2000년대 4.4%로 지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 대부분이 3% 중후반대 전망을 내놨다. 연초 전망치가 긍정적 관점에서 제시한 목표치임을 고려하면 실제 체감경기 개선 폭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저성장 기조가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기업 투자 부진, 가계 소비 부진과 더불어 저출산 고령화에 의한 경제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연속 경신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마저 증폭되고 있다.

현 시점의 한국은 지속성장 사회에서 저성장 성숙사회로 진입하는 ‘변곡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기존의 시간단축형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 측면에서는, 더딘 세계 경제 회복세에 의한 시장성장 정체, 원화 강세 현상에 따른 수출 가격경쟁력 저하, 중국 등 신흥국 기업의 빠른 추격까지 동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기업, 혁신적 생존전략 필요

글로벌 경제 상황과 한국의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 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수출주도형 한국 기업이 눈부신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핵심역량은 ‘선택과 집중에 의한 패스트팔로잉(Fast Following)’이었다. 기존 시장을 이해하고 전략적이며 뚜렷한 목표를 수립해 자원을 집중 투자함으로써 제품 매력도와 기술력을 극적으로 향상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봉착한 생산성 향상 한계와 신흥국 기업과의 무한경쟁은 기존 역량을 뛰어넘는 ‘이노베이터(Innovator)형’ 생존전략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사업 모색 범위를 넓혀 미경험 산업섹터까지 검토한 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 성공 체험에 얽매이지 않는 신사업 추진 의사결정과 그에 적합한 인사평가 제도 도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편 내수중심형 기업은 저성장 문턱에 선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성숙사회 소비자 특성에 대한 메가트렌드를 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사업 대상 시장, 고객, 채널의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직·간접 경쟁의 지평이 확대되는 것을 고려한 시장 재정의와 고객 소비 행태 변화에 맞춘 복수채널 전체 최적화 전략이 경쟁 승리를 위한 필수 요소가 된다.

한국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환경이 우호적이었던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나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는 역경을 딛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 온 것이 한국의 저력이다. 바로 지금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 시점이다. 그것이 바로 글로벌 경제가 한국에 기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최창희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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