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설득과 타협이다. 하지만 지난 1년은 극단과 극단이 부딪쳐 정치가 증발한 해였다.
야당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을 키우며 대선 불복까지 선언했다. 의사들은 원격의료와 병원 자회사의 영리사업 허용에 반대하며 파업까지 선언했다. 통상임금 개편과 관련해 노사 갈등과 춘계투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증오와 저주의 대립만 보인다. 논리나 설득은 없고 무작정 “너는 싫다”는 식의 극단적 반응뿐이다. 사회 분열을 막으려면 새로운 소통 방식을 교육해야 한다.
특히 논리보다는 감정을 짙게 드러내는 대화 습관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상대방과 토론 주제를 구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훈련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싫어도 그의 생각이 옳으면 인정하고 대화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부분 지향적 의사소통에 익숙지 않다. 상대가 싫고 생각이 서로 다르면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 사람과 생각 모두를 한데 묶어 배척하는 일원론적 사고와 전체 지향적 의사소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풀뿌리 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는 요원하다.
한국의 유별난 ‘상극정치’를 해소하려는 시도가 과거에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기법이 몸에 밴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에 타협과 화합의 정치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필자는 미국 대학에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다. 중고교의 수업을 참관할 때였다. 미국 교사는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미리 읽어온 주제에 관해 요점을 찾아 토론을 진행하도록 지도했다. 토론식 수업인 셈이다.
학생들은 “요점이 무엇인가?(What's your point?)”라든가, “문제의 핵심으로 가자(Let's get to the point)”라고 곧잘 말한다. 화자는 자신의 말을 논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량화한다. 사실에 입각한 증거가 필요하며 증명과 무관한 감정적 대응은 논쟁에서 허용될 수 없음을 어려서부터 체득한다.
자기 의사를 논리정연하게 분석적으로 개진하면서 사람중심(people-oriented)이 아닌 문제중심(task-oriented)으로 해결책을 찾도록 훈련받기에 화자를 주제에서 분리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상대방 생각이 나와 달라도 그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하고 격론 후에도 앙금 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이처럼 남을 배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품격 있는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가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체질이다. 대화와 타협문화가 체질화된 민주적 지도자와 국민이 없다면 민주적 제도는 구호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초중고교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교육과 훈련 없이 상생의 민주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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