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창 어지러울 때 형사들에게 불려가 조사받느라고 철야는 했지만 워낙 피라미라 별일도 없었는데 어머니는 나라가 조금만 시끄러워도 쉰 중반 션찮은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여동생이 모시고 사는 인천에 일주일에 한 번씩 문안 가는 일로 장남 일을 때우고 있는데 어느 날은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 묻는다
니가 뭔일 저질른 것 아녀 그런디 왜 차코 테레비에서 니 얘기를 허는 거여
무슨 얘기냐는 질문에 누이가 말한다 사대강 예산삭감 문제로 국회예결위원장석을 점거 한 야당을 물리치고 여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오빠, 너한테 전화혀보라고 엊저녁부터 난리라고 강행처리가 차코 나온다고 큰일이 터졌다고
시집 ‘환생’에서 옮겼다. 홀로 고향집을 지키시던 시인의 노모가 알츠하이머병 치매가 발병해 시인의 누이 집에서 수발을 받으실 때의 에피소드다. ‘귀가 어둡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의 오해에서만 이 소동이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세상 그 바닥에는 큰일 앞에 물러서지 않는 아들과 가슴을 쥐어짜는 당신이 있을 뿐이다.’(시집 해설에서)
현재 시인은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열아홉 무렵 어머니의 품을 떠나 사십여 년 객지 생활을 하고 다시 그 품에 돌아와서 새삼 어머니의 사랑을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생각에 약간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것들이 없지는 않았는데 이즈음에야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도 깨달았다.’(‘시인의 말’에서) 노년에 든 아들이 치매 앓으시는 어머니를 혼자 모시는 나날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련만, 시집 곳곳에 웃음이 배어난다. 따뜻한 유머가 넘치던 시인의 얼굴이 그립게 떠오른다. 아들 하나 참 잘 키우신 어머니시여,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시를 긷는 강형철이시여, 안녕들 하시기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그 어머니와 소통하며, 그 어머니에게 농담을 건네는 시인은 세상의 다른 모든 혼돈과도 소통을 시도하며 특별한 애정을 유지하려 한다.’(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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