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유리천장을 깼던 최연혜와 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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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최근 사퇴한 청와대 비서관들이 모두 여자라는 건 우연일까. 이혜진 법무비서관, 정영순 여성가족비서관, 김행 대변인이 지난해 말 시차를 두고 잇따라 사직했다. 이보다 앞서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이 그만뒀다. 취임 1년이 안돼 청와대 여성 비서관 6명 중 4명이 교체됐다. 관료 출신 장옥주 보건복지비서관과 국책연구원 출신 류정아 관광진흥비서관 등 2명만 버티고 있다.

부산이 근거지인 이 전 법무비서관은 일 가정 양립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뿐, 다른 비서관들의 속사정이야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안타까운 점은 그만둔 여성 비서관들이 일 잘한다는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해 마시라. 그렇다고 남자들이 일 잘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니깐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적은 여성 장관 수를 비서관에서 벌충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박 정부의 여성 비서관은 6명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 3명보다 배나 많다. 문제는 기회가 주어진 여성들이 대통령의 부름에 값할 능력과 품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는 점이다. 각자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가였겠지만 전문성과 국정 보좌능력은 다른 문제였다. 일하다 실패한 것도 아니고 뭘 했는지도 모른 채 사퇴라니, 치열함의 부족을 드러낸 것 같다. 이런 치열성의 결여가 여자의 한계라면 이들의 사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퇴한 여성 비서관 사례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최장기 철도파업에 대처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을 보면 그렇다. 그는 철도대학 교수와 철도청 차장을 지내 낙하산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총선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여자가 방만한 코레일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철도파업을 계기로 그는 이런 우려를 날려버렸다.

철도파업 첫날인 지난해 12월 9일 최 사장은 파업 참가자 전원을 직위해제했다. 파업 22일 가운데 19일을 상황실이 차려진 코레일 서울본부에 간이침대를 놓고 먹고 잤다. 철도파업 철회는 명분 없는 파업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 이유가 있지만 여(女)사장의 강단과 배짱에 노조의 전열이 상당히 흐트러졌다는 후문이다. 만일 남자 사장이었다면 파업이 며칠은 더 끌었을지도 모른다는 칭찬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원하든 원치 않든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데 기여했다. 검찰조직 65년 만에 첫 여성 검사장이 나왔고, 국책은행이라 가능하긴 했겠지만 최초의 여성 은행장도 배출됐다. 될 만한 인물이 됐다고 해도 ‘박근혜 효과’를 부인하기 어렵다. 권선주 기업은행장도 여러 명의 부행장 가운데 한 명이었기에 이번에 행장이 안 됐으면 집에 갔을 것이다.

최근 필자가 귀가 따갑게 듣는 말이 ‘여성 인재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다. 기업과 공공영역 할 것 없이 하도 요청이 많아 아예 헤드헌터 회사를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기회를 주지 않아서, 또는 남자들이 흔들어 대서 능력 발휘를 못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남대문 부실 복원과 관련해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경질이 억울하다는 평가는 후임자 또한 여성으로 결정되면서 쏙 들어갔다.

가장인 남편이 어느 날 나이도 많고 몸도 아프다면서 물러앉았다. 부양 책임은 그동안 남편에게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은 부인에게 돌아왔다. 그동안 남편이 감내하던 온갖 고뇌와 스트레스도 이젠 부인 몫이란 얘기다. 그러니 유리천장이 깨지는 것은 반갑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시켜봤더니 역시 안 되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개인의 불명예를 떠나 여성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일이다. 최연혜가 될지, 김행이 될는지는 여성 스스로에게 달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청와대 비서관#여자#사퇴#최연혜#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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