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털옷 입은 권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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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수, 권총, 2008년, 캔버스에 유채, 112.1×162cm
함명수, 권총, 2008년, 캔버스에 유채, 112.1×162cm
굳이 화가의 이름을 묻지 않더라도 누가 그렸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 있다.

주제, 구도, 기법, 색채가 매우 독특해서 누구의 그림인지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차별화된 화풍을 가진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함명수를 손꼽을 수 있겠다.

그의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것. 권총의 매끄러운 금속 질감과 털실의 보슬보슬한 섬유 질감을 대비시킨 이 그림도 공감각을 자극한다.

권총과 털실의 질감을 함께 표현한 화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상반된 두 속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남근의 형태를 닮은 권총은 남성적 속성을 상징한다.

공격, 파괴, 기계적인 남성적 속성을 차가운 메탈 질감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 손뜨개질용 털실은 여성적 속성을 상징한다.

사랑, 평화, 자연적인 여성적 속성을 부드러운 털실 질감으로 나타낸 것이다.

메탈 질감과 털실 질감을 강조하기 위해 함명수 특유의 붓터치도 개발했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는 대신 1호 크기의 세필로 물감을 떠내 피아노를 연주하듯 캔버스에 리드미컬하게 얹는다.

얹힌 물감이 마르기 전에 깨끗하게 손질된 굵고 가는 붓으로 강하게 또는 부드럽게 문지르면 금속이나 털실의 질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핏빛 자오선’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 감정을 잘 알고 있지. 공허와 절망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무기를 드는 것이 아니던가. 피는 바로 그 감정이 바짝 굳지 않도록 해주는 완화제이지 않던가.’

여자들이 남자들을 털옷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면 이 세상에서 무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화풍#함명수#권총#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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