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라! 안도현은 평범한 풍경이나 소소한 사물에도 기발한 상상력과 적확한 수사(修辭)로 그럴싸한 새 옷을 지어 입힌다. 비처럼 눈도 술을 부른다지. 술꾼의 흥에 겨워서가 아니라, 낮고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혼자 술을 마시며 지새운 눈 내리는 밤. 아침이 되어 눈이 그치고 화자의 집 앞에 펼쳐진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귀는 아홉 개에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겨울 들판, 겸허하고 무구한 자연이어라. 쌓인 눈 위에 청둥오리도 족제비도 거리낌 없이 발자국을 찍을 테지만, 화자 자기는 안 찍고 싶단다. 차마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단다. 그런데 참 담배가 뭔지!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은’ 화자다. 다녀와서는 눈 묻은 신발을 툇마루 아래 벗어 던지고 또 마음이 자조감으로 자욱해진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라고. 발자국, 족적(足跡)은 살아 있는 흔적, 삶의 흔적이다. 시인에게는 시가 삶의 흔적일 테다. 화자가 안도현 자신이라면, 자기 시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구절은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엄하게 돌이켜보는 것일 테다. 화자의 괜찮지 않은 심사를 전하는 편지에 ‘이 세상 아닌 곳’의 한 시인은 답하리. 괜찮타, 괜찮타, 괜찮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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