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국내 첫 군인자녀 기숙형사립학교 김태영 한민高 이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0일 03시 00분


“확고한 국가관과 실력 겸비한 글로벌 인재를 기르겠다”

김태영 한민고 이사장은 지난해 전국을 돌며 신입생 입학설명회를 열 때 ‘김태영’이란 이름을 걸고 명문고교를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그가 걸겠다는 ‘김태영’은 문무를 겸비한 글로벌 인재다. 김 이사장이 17일 마무리 단계인 최첨단 학교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파주=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김태영 한민고 이사장은 지난해 전국을 돌며 신입생 입학설명회를 열 때 ‘김태영’이란 이름을 걸고 명문고교를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그가 걸겠다는 ‘김태영’은 문무를 겸비한 글로벌 인재다. 김 이사장이 17일 마무리 단계인 최첨단 학교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파주=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17일 오후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의 한민고등학교 강당에서 신입생 예비소집이 있었다. 한민고는 3월 3일 개교 예정이어서 이들은 3년 후 1회 졸업생이 된다. 이 학교는 좀 특별하다. 국내 최초의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사립 고등학교다. 학부모가 대부분 군인인 것이다.

예비소집 행사에서 큰 박수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김태영 한민고 이사장(65). 국방부 장관이던 2009년 이 학교를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2011년부터 무보수로 이사장직을 맡아 동분서주해 왔다. 김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데 학생, 학부모, 교사의 신뢰가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를 만나 개방과 자율을 중시하는 21세기에 군인 자녀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는 학교가 필요한지부터 물어봤다.

“군인들은 근무지가 자주 바뀐다. 20년 이상 군인 생활을 하면 평균 17번 이상 이사를 한다는 통계가 있다. 부대 근처는 교육시설이 열악해서 훌륭하게 자랄 아이들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교육복지다. 한민고는 그 실천을 위한 출발이다.”

軍자녀 70%…입학생 평균내신 상위1%

김 이사장 본인도 결혼 35년간 29번 이사하고 9년간 아이들과 떨어져 살았다. 대령 시절 영국 근무 때 정부가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학교를 만들어 지원하는 것을 보고 한민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요즘 아내로부터 “자기 자식은 신경도 안 쓰더니 남의 자식 교육에는 왜 그리 열성이냐는 핀잔을 듣는다”며 웃었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군인복지기본법을 개정해서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정부 지원 350억 원과 국방부 내 호국장학기금 200억 원을 더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도 같은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만큼 반응이 좋다.”

첫 입학생은 412명(정원 외 9명 포함). 전국에서 지원한 군인 자녀가 70%이고, 나머지 30%는 경기도 내 중학 졸업생들이다. 성적순으로 뽑다 보니 여학생이 훨씬 많다(여자 8개 반, 남자 5개 반). 입학생의 평균 성적은 내신 200점 만점에 197.5점으로 상위 1% 내에 든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군 자녀 중 중학 3년생은 해마다 5000∼5500명. 그중 300명 미만이 한민고에 들어오니 경쟁률이 높다. 이번 군 자녀 경쟁률은 3.7 대 1.

영어-한자-IT 등 졸업인증제 도입

―우수한 학생들이 이 학교에 올 만한 메리트가 있나.

“첫째는 기숙형 학교라는 점이다. 다른 기숙형 고교나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등이 있지만 군인 봉급으로는 보내기가 만만찮다. 한민고는 연 학비를 1100만 원 이하로 묶을 생각이다. 또한 우리 학교 학부모들은 그저 공부만 잘하는 자녀를 원하지 않는다. 학원 같은 학교는 싫다는 것이다. 우수 학생이 많이 온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민고의 수준과 미래를 믿어준 결과로 본다.”

김 이사장이 소개한 커리큘럼에는 독특한 것이 많다. 물론 김 이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1학년 때 집중적으로 진로교육을 한다. 원하는 길을 빨리 찾아주기 위해서다. 글쓰기도 중점 교육 대상이다. 한 가지 악기는 반드시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체육 교육도 중시한다(1인 2기). 영어 수학 과학 등은 ‘2+1’ 교실, 즉 2개 학급을 3개 반으로 나눠 심화·보통·보충반으로 수준별 수업을 한다. 영재반도 따로 운영한다. 선택과목은 이동수업을 하고 AP(대학과목 선이수제), UP(대학수준 수업)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5가지 졸업인증제(영어 한자 정보기술(IT) 예술 체력)를 도입하고 폭력, 음주·흡연,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금하는 ‘5행(行) 3금(禁)’제도도 독특하다. 지덕체 교육 중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겠다는 게 김 이사장의 욕심인 듯하다.

―한민고가 기르고자 하는 인재상은….

“글로벌 인재다. 고교 졸업생의 80%가량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다. 국내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해외에서도 통하는 인재를 기르겠다. 모든 학생이 재학 중 일주일간 외국에 나가 특정 테마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나 외국어 영재반도 구상 중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사 교과서 문제도 글로벌한 시각에서 공과 사를 객관적으로 따지면 될 일이라고 했다. 한민고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 문제는 학교운영위 등에서 시간을 두고 더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IT환경 고교 최고… 휴대전화 사용 금지

―결국은 교사들의 역량이 중요한데….

“교사 정원은 3학년까지 다 차게 되면 81명이다. 이번에는 28명만 뽑았다. 평균 경쟁률이 27 대 1이었다. 높은 과목은 50 대 1도 있었다. 월급이 깎이는데도 좋은 사립고에서 오신 분도 있다. 비경력직도 전원 경기도 내 임용고사 합격자들이다. 내달에 일주일간 교사워크숍을 연다. 많은 대화를 통해 가치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한민고는 이번에 채용한 교사 전원에게 학교 내의 사택을 제공했다. 사택에 여유가 없어 다음에 오는 교사들에게는 다른 사기 진작책을 고민 중이다.

―군인 자녀와 일반 자녀 간에, 군인 자녀 내에서도 부모의 계급에 따라 위화감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나.

“1970년대 비슷한 목적을 갖고 설립됐던 서울 중경고(현재 자율형 공립고)나 춘천 제일고(현재 강원대사대부고) 등에서도 그런 문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을 위해 군인 자녀와 일반 자녀를 알지 못하도록 하고, 부모의 계급에 대한 집계도 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군인 부모들이 학교에 올 때는 군복을 입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군인 자녀 학교라는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텐데….

“너무 군 분위기가 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주니어 ROTC(J-ROTC) 프로그램 같은 것은 고려 중이다. 전체가 아니라 동아리 차원에서 운영해 볼 계획이다.” J-ROTC 프로그램은 보이스카우트 같은 프로그램과 군의 리더십 프로그램을 융합한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 경력은 사관학교나 경찰대 지원자 등에게는 좋은 스펙이 될 수 있다. 비무장지대(DMZ) 대장정도 고려 중이다.

한민고의 방침 중 학부모로부터 큰 지지를 받는 게 있다. 교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발은 없겠는가.

17일 예비소집에 나온 한민고 첫 신입생들. 배정이 아니라 선택한 학교여서인지 ‘기쁘다’는 반응이 많았다.
17일 예비소집에 나온 한민고 첫 신입생들. 배정이 아니라 선택한 학교여서인지 ‘기쁘다’는 반응이 많았다.
“휴대전화 사용을 못 하게 하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 않다. 휴대전화 사용 금지는 휴대전화에 뺏기는 시간에 다른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절제심도 길러줄 수 있다.” 학교는 그 대신 스마트 공중전화(문자사서함, 영상통화 가능)를 설치해 부모와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한 학교 전체가 와이파이 환경. 교실마다 스마트칠판을 설치해 온라인 자료를 수업에서 적극 활용하고, 교사의 수업자료를 학생이 개인 면학실에서도 공유할 수 있다. IT 환경은 고교 중에서 최고라는 게 학교 측의 자랑이다.

―기숙학교(4인 1실)라는 게 장점도 있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그렇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24시간 같이 지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할 수 있다. 7명의 생활지도교사를 적극 활용하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 의욕을 고취하면서, 취미 활동을 북돋우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학생들의 외출은 월 한 차례.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2시에 나갔다가 일요일 오후 10시까지 귀교한다.

서울대 교수 27명이 멘토 지원

―신설 학교로서 선배가 없다든가, 커리큘럼의 적정성 문제라든가 하는 고민이 있을 텐데….

“그 대신 군인 부모 밑에서 자란 서울대 교수 27명(다른 대학까지 확대해 100명 목표)이 한민고 멘토단을 만들었고, 서울대 사범대도 커리큘럼 마련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주한 미군과 주한 중국대사관도 원어민 교사 등을 보내 도와주겠다고 했다.” 외부 도움은 전적으로 경기고와 육사를 졸업하고,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내는 동안 김 이사장이 쌓아 온 인적 네트워크의 덕을 보고 있다.

한민고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가운데 두 자를 따왔다. 건학이념은 ‘올바른 국가관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 양성’. 일반 사립고교를 지향하지만 당분간 군과 분리해서 소개하긴 어려울 듯하다. 김 이사장을 인터뷰하면서 언뜻 영국 웰링턴 장군의 말을 떠올렸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함으로써 유럽의 질서를 재편한 그는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운동장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튼은 이튼 칼리지, 즉 그가 졸업한 명문 사립 고교다.

교육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변수도 많다. 그래서 한민고의 미래도 점치기 어렵다. 다만 주목할 만한 고교가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 김 이사장은 첫 신입생이 졸업하는 모습까지는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6만2800m2(약 1만9000평)의 너른 터에 자리 잡은 한민고는 어쩌면 4성 장군 김태영의 ‘마지막 전장’인지 모른다. 3년 후 그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인터뷰=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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