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영욱]저작권과 사진 값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0일 03시 00분


2010년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해 대한항공 TV광고에 이용된 ‘아침을 기다리며’.
2010년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해 대한항공 TV광고에 이용된 ‘아침을 기다리며’.
마이클 케나가 2007년 발표한 솔섬 사진. ‘Pine Trees’ 연작 중 한 컷.
마이클 케나가 2007년 발표한 솔섬 사진. ‘Pine Trees’ 연작 중 한 컷.
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물에 비친 소나무 섬의 사진 가격은 30만 원일까, 3억 원일까? 국내 대기업이 해외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과 유사하게 찍은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다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올해 1월 14일 영국의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에 대해 한국 대기업들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우선 대한항공과 다퉈 보겠다며 광고가 종영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3억 원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법원의 결론과 상관없이 사진의 저작권이 공론화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문제가 된 사진은 강원 삼척시의 솔섬이라는 섬의 사진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속섬인데 삼척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이클 케나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케나는 2007년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모래톱 위에 서 있는 3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물에 비치는 장면을 흑백 사진 몇 장으로 표현하며 ‘Pine Trees’라는 제목을 붙였고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은 솔섬을 케나의 전유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기가 그린 그림과 일기장도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면 저작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법 정신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케나가 현재 소송 대리인인 공근혜갤러리에서 1월 10일∼2월 23일 최근 2년간 작업한 한중일의 풍경 사진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2006년 제2회 삼척관광사진공모전에서 최종준 작가가 이 섬을 촬영해 ‘호산의 여명’이라는 제목으로 입선한 적도 있기 때문에 원조를 주장하는 것도 무리라는 게 사진계의 중론이다.

인터넷에는 속섬에 대한 수천 건의 촬영 정보가 넘치고 있다. 카메라의 각종 수치와 찾아가는 길, 적정 시간과 촬영 포인트까지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 인심처럼 후한 게 사진 인심이다. 외국과 달리 촬영 정보를 나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아마추어 작가들은 수십 명씩 팀을 꾸려 다니면서 같은 사진을 찍어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작가들이 솔섬을 촬영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싼 가격이나, 말 잘하면 공짜로도 사진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2011년 8월 ‘감동이 솔솔’이라는 15초짜리 TV 광고를 만들면서 아마추어 사진가의 솔섬 사진을 사용했다. 이 사진은 2010년도 제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50여 점의 작품 중 하나인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사진이었다. 당시 작가는 상장과 함께 국내선 왕복 이코노미클래스 항공권 2장을 받았을 뿐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음원에 대한 저작권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면서 작곡가들의 삶이 예전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예술이 배고픈 직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점점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조건 저작권을 들이밀며 상식을 넘어서는 돈을 요구하는 에이전시의 태도도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아마추어 작가들 스스로 땀 흘려 만든 작품을 너무 쉽게 기업이나 단체에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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