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김진태 검찰의 기업수사 ‘왼새끼 꼰 죄’도 묻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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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개혁 수사는 비리를 겨냥… 기업 잡는 수사는 ‘밉상 손보기’
‘대충 다뤄도 되는’ 기업은 없다… 기업보다 권력의 일탈이 더 문제
먼지털기 식 표적수사는 검찰은 물론 청와대 신뢰를 훼손
총장 취임 전의 수사도 살펴보길

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아들 재용 씨에게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D) 및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 발행해 재산을 편법 상속한 혐의로 특검에 의해 2008년 기소됐다. 세부 사안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지만 적어도 ‘삼성, 또는 이 회장 손보기’ 같은 해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대기업의 승계 관행이 정상화되고 관련 세법도 정교해졌다. 신뢰 준법 투명성 등 사회적 자본을 키운 기업 개혁 수사였다.

기업을 잡으려는 수사는 다르다. 잘못된 행태가 아니라 ‘밉상’을 표적으로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밉보여 1985년 공중분해된 당시 재계서열 7위 국제그룹(회장 양정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의 현대그룹 수사도 마찬가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대선 출마한 죄를 물어 12번이나 법정에 드나들게 했다. 정권 말까지 현대에 대한 금융창구는 차단됐고 철강 등 신사업 진출도 막혔다.

기업 잡는 사법시스템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때문에 대부분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미운 놈만 솎아내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 무리한 법 적용을 통한 먼지털기식 수사도 횡행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법규 준수는 뒷전이고 권력 눈치를 먼저 본다. 사법 후진국이다. 이 같은 법 적용의 극단적 사례가 북한의 장성택 처형이다. 그에게 적용된 형법상 죄목은 국가전복음모였지만 진짜 죄목은 ‘삐딱하게 앉아, 건성건성 박수 치며, 마음속에 왼새끼 꼰’ 것이었다.

이 정부 들어 SK, CJ, 효성, 동양, LIG, 금호석유화학, 웅진, KT 등 10여 개 대기업이 수사를 받았다. 정권 초기의 대형 기업 수사가 일단락된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국제그룹으로부터 30년, 현대로부터 20년가량씩 지난 이 시점, 우리의 기업 수사는 얼마나 진화했을까. 기업 체질을 선진화하는 수사만 남고 기업 잡는 수사는 없어졌을까.

동양과 LIG그룹 총수의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법정관리신청 직전에 갚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 기업어음 등을 찍어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일종의 사기행각이었다. 엄히 다스려 재발을 막아야 한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 형제가 범법 사실을 알고 용인했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현재 상고심 중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진술과 증거뿐이라면 확정판결이 난다 해도 논란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효성은 과거 밀어내기 수출을 한 것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실자산이 돼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일단 손실을 감춘 뒤 매년 이익이 날 때마다 편법 상계해온 것이 사건의 핵심. 법의 잣대로는 ‘이익도 감췄으니 법인세 포탈’이 분명하지만 효성으로서도 할 말이 없지 않다. 600억 원대 비자금을 운용한 CJ 이재현 회장은 과거의 잘못을 털려 했지만 시효만료의 속도보다 청산의 속도가 늦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뒷맛이 남는다.

한편 지난 정부 때 기소돼 작년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가 인정된 후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에 대해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겠다 싶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독려로 계열사를 지원한 것이 이제 와 범법으로 다스려지고 있다. 듣기에 거북한 얘기지만 총수 일가의 튀는 행동이 거듭되면서 ‘대충 다뤄도 되는 기업’쯤으로 낙인찍힌 듯하다. 그러나 그건 안 된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겠지만 이석채 전 KT 회장에 대한 수사는 지켜보기에 거북하다. 합병 및 자산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127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배임 혐의는 공소 유지가 가능할지조차 의문이다. 업무추진비 편법 조성을 이 전 회장 구속 사유로 내세우는 것은 영 군색하다. 이러니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부족’을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거다. “정권의 회장직 퇴진 요구를 거부한 죗값을 묻는 수사”라는 지적은 청와대에 대한 신뢰까지 까먹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작년 12월 취임사에서 “범죄인이 아닌 범죄행위만을 제재 대상으로 삼고 환부만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합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사를 받아본 기업인들은 ‘마구잡이 수사’라고 불평한다. 정말 큰 문제는 표적수사다. 권력의 일탈은 기업 일탈과 비교할 수도 없는, 훨씬 엄중한 잘못이어서다. 김 총장은 잘 살펴보기 바란다. 총장이 되기 전 이뤄진 기업 수사도 취임사의 취지대로 진행돼 왔는지를.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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