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자문위원으로 정치권과 첫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대결한 2002년 대선에서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실세들이 모인다는 인수위에 이름을 걸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선거 공신들이 한 자리 달라고 아우성이어서 인수위 자문위원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600명이나 됐다”고 귀띔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에 적지 않은 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철도대 교수 최연혜는 2004년 11월 철도청 차장에 발탁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 “최연혜만큼 참한 여성 인재가 없다”며 천거했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철도청의 구조적 문제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로 여성과 약자를 배려한 노 대통령이 볼 때도 좋은 선택이었다. 최연혜는 이명박 정부에선 철도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최연혜처럼 좋은 스펙을 가진 여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울대 독문과 졸업에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 박사, 철도대 교수에 철도경영론 책도 썼으니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권마다 그를 중용한 이유도 많지 않은 여성 전문가 풀에 그가 들어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선 좌절을 맛본다. 2012년 총선에서 여성 몫 새누리당 후보로 대전 서을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민주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까지 붙은 3자 대결에서 표가 나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손잡고 유세장을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10월 한동안 비어 있던 코레일 사장에 박 대통령은 최연혜를 임명했다. 철도청 차장과 철도대 총장을 지낸 경력은 낙하산 인사로 대 놓고 비판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어 언론의 혹독한 검증도 피해 갔다. 코레일 파업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 최연혜의 강한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최연혜는 누가 뭐래도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근 정치인이다. 노무현 인수위, 박근혜 새누리당에서 의원 출마를 보면 여당 지향적 정치 성향이 엿보인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지구당 당협위원장에 측근을 써 달라는 청탁을 여당 대표에게 한 것은 정치 귀소(歸巢) 본능이 발동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대표적인 구태 ‘대리인 정치(Agency Politics)’라는 점에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몸은 코레일에, 마음은 지구당에 있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2년 뒤 국회의원 자리를 의식하지 않고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저 구경만 하자니 지역구를 빼앗길 판이어서 안달이 났을 법도 하다.
하기야 국회를 떠나는 정치인이 당협위원장에 측근을 앉히는 일은 여의도 정가에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원님이 오시면 바로 비켜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믿고 자리를 내줬다가 한동안 의원직을 되찾지 못한 정치인도 적지 않은 게 잇속에 밝은 여의도 정치다.
대낮에 여당 대표를 찾아가 대 놓고 ‘자리를 봐 달라’고 칭얼댄 최 사장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정무 감각이 부족한 사람에게 큰일을 계속 맡겨 둬도 되는지 모르겠다. 노조가 드센 코레일에서 사장이 한눈 팔면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당 저당 기웃거리는 최 사장이 어떻게 노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2016년 정치의 모천(母川)에 회귀하려는 연어 최연혜. 이제는 코레일 사장의 무게도 힘겨워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