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왕이다/김정호]법, 소비자의 발목을 잡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2일 03시 00분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
《 경제의 주인은 소비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상인과 기업의 기득권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소비자를 위한 법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래서는 경제성장도 이뤄질 수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잃어버린 소비자 권리를 되찾기 위해 학자와 전문가, 일반 시민이 참여한 소비자 권익단체 ‘컨슈머워치’가 이달 16일 출범했다. 동아일보는 컨슈머워치 필진들이 참여하는 ‘소비자가 왕이다’ 칼럼을 새해부터 시작한다. 》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갈 때마다 찜찜한 기분이 들곤 한다. 불법 행위에 가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중위생관리법은 미용사가 남자 머리를 이발하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골로 내 머리를 깎아 주는 미용사는 항상 공중위생법 위반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용사는 대략 8만여 명이니 이들 대부분이 따지고 보면 범죄자다. 여기에 남자 고객은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 이발소들이 들고일어나 미용실을 고발하려는 구체적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미용사들의 집단 반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만약 미용실에서 머리를 못 깎는다면 나를 비롯한 남자들은 억지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본(本)과 말(末)의 전도이다. 이발사든 미용사든 나라에서 면허를 주는 취지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엉터리 이발사나 엉터리 미용사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이제 그 법이 이발사의 ‘밥그릇’을 보호하는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생기게 됐으니 말이다.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어디에 가서 머리를 깎을지는 소비자가 선택할 문제다. 이발소와 미용실은 소비자의 뜻을 받들어 머리만 잘 깎으면 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 법으로 소비자의 발을 묶으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공중위생관리법과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소비자가 왕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든다. 소비자를 자기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존재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유디 치과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임플란트 시술비용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와 더불어 적정비용에 대한 논란도 가중됐다.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임플란트 시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유디 치과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임플란트 시술비용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와 더불어 적정비용에 대한 논란도 가중됐다.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임플란트 시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임플란트 가격 혁명의 주역, 네트워크 치과(그중에서도 특히 유디 치과)를 불법화한 입법이다. 원래 임플란트는 개당 300만 원을 호가했다. 시술을 받고 싶으면 제법 큰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게 임플란트였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전 유디 치과라는 새로운 네트워크형 치과가 가격 혁명을 일으켰다. 유디 치과는 치과 의사들의 재료 공동 구매, 병원 지원 기능의 통합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원가를 낮출 수 있었고 원가 절감분은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임플란트 가격은 100만 원대로 떨어지게 되었다. 소비자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치과 의사들의 반발이었다. 유디 치과의 가격 혁명에 따라 덩달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치과 의사들이 예전처럼 임플란트로 큰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들고일어났다. 대한치과의사협회까지 나서서 혁신의 주역인 유디 치과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디 치과와 치과의사협회의 길고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치과의사협회의 행동을 불공정하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치과의사협회는 국회의원들에게도 압박과 읍소를 했고, 급기야 민주당의 양승조 의원은 유디 치과를 불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었다. 임플란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서 치과 의사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이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쯤은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 분쟁에는 발암 물질을 썼는지, 사무장 병원의 존재 여부 같은 쟁점들도 있었다. 하지만 쟁점이 무엇이든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양 의원이 소비자들보다는 치과 의사의 이익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임플란트 가격 혁명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혁신은 소비자만이 아니라 치과 업계의 발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소비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어떤 소비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컨슈머워치는 이익집단의 목소리만 넘쳐 나는 법과 정책 결정의 장에서 소비자의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대통령과 장관과 국회의원들에게 소비자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앞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하고 있는 법률과 정책들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고 소비자를 주인으로 세우기 위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휴대전화기 보조금 규제, 공기업 민영화, 어린이집 설립 규제, 의약분업, 택시 감차 정책 등 민감하지만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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