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KBS의 수신료 인상안이 퇴짜를 맞았다. 언제 광고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목표도 없이, 올해 수신료를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리면 연간 6000억 원의 광고 수입에서 2100억 원가량을 줄이겠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그제 “광고를 궁극적으로 없애는 게 공영방송인데 그런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만히 보니 KBS는 수신료를 올리고 광고를 일부 줄이며 입을 닫으려는 속셈인 것 같다”며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2017년 광고를 추가로 감축한 뒤 2019년에는 완전한 공영방송 체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BBC, 일본의 NHK는 광고방송을 내보내지 않는다. 시청률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공영성을 추구할 수는 없다는 방송철학 때문이다. 억대 연봉자가 35%나 되는 KBS가 수신료 인상을 들고 나오면서 ‘광고 없는 공영방송’이라는 목표를 뺀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청률 경쟁에 목매지 않는 공영방송 체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광고 전면 폐지에 대한 로드맵이 필수적이다.
광고 폐지는 궁극적으로 KBS의 공영성 강화뿐 아니라 다른 미디어 산업과의 균형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한정된 광고 재원이 신문과 케이블TV 등에 돌아가면서 미디어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막장 드라마’ ‘막말 토크쇼’가 판치는 방송에서 우리 사회의 올바른 가치를 지키고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BBC와 NHK는 광고 없이 고품격 재미와 공공성을 갖춘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출도 한다. 지난해 50주년을 기념한 장수 드라마 ‘닥터 후’를 비롯해 귀족사회를 그린 시대극 ‘다운턴 애비’, 셜록 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셜록’ 등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인기 높은 BBC 드라마들이다. NHK는 1963년부터 해마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무게 있는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KBS 2TV는 상업방송과 하등 다를 게 없는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으로 소모적 경쟁에 매몰돼 있다.
방통위는 다음 달 초 광고 폐지 관련 로드맵에 대한 검토를 거친 뒤 수신료 인상안과 함께 국회로 넘길 예정이다. KBS는 자나 깨나 수신료 인상 타령만 하지 말고 공공성을 살리는 개혁과 방만경영 개선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철학과 품격을 갖춘 콘텐츠로 경쟁하고, 임시변통식의 광고 축소 대신 광고 없는 국가기간방송의 비전을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