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삼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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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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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응답하라 1994’에서 “니나 하지 마라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산다는 건 늘 선택이다” 등의 명대사를 펑펑 쏟아내던 촌놈, 삼천포(김성균 분). 투박한 사투리로 20대 청춘의 여린 감성을 감칠맛 나게 표현했던 그의 이름에서 아름다운 항구도시, ‘삼천포’를 떠올린다. 삼천포도 ‘응사앓이’에 일조했음에 틀림없다.

삼천포, 1995년 5월 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군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이름을 잃었다. 그렇지만 유래조차 정확하지 않은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표현은 버젓이 살아남아 아직도 삼천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그런데, ‘이야기가 곁길로 새다’라는 의미로까지 넓혀져 사용돼서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정설은 없다. 옛날에 진주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진주 밑의 작은 항구였던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뜻으로 쓴 것이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말이란 그렇게 무섭다. 처음엔 누군가가 아무 뜻 없이 썼을 텐데…. 본보가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연중 시리즈를 시작한 연유이기도 하다.

삼천포시가 없어지기 얼마 전에도 소동이 있었다. 1995년 1월 김상현 당시 민주당 고문이 이기택 민주당 대표의 말 바꾸기를 지적하며 “삼천포로 빠졌다”고 비난했던 게 사달이 났다. 삼천포 시의회는 즉각 “김 고문의 발언은 삼천포가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잘못되는 일의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시의회의 주장은 이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동아일보 1995년 1월 6일자 휴지통).

신문과 방송에서 이 말을 ‘잘 나가다 샛길로 빠진다’ 등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삼천포는 “오밀조밀한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한번 가본 사람은 다시 가고 또 가는 곳이다”(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고향 이름을 잃으면 다시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삼천포 사람들은 그렇지도 않다. 착해서라고 한다. 자, 이쯤 되면 아예 삼천포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요즘 삼천포항은 물메기가 제철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삼천포#삼천포로 빠진다#진주#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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