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사랑과 이별 그리고 위험한 흔적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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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절대 남에게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정말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제가 2006년 2월 11일 당시 유행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에 적은 글의 일부입니다.

스물두 살 대학생이던 저는 당시 여자친구가 ‘치명적인 거짓말’로 믿음을 깬 데 상처받아 이별을 통보했었죠. 서른이 된 지금 이 글을 떠올리니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었습니다. 글 쓴 시간을 보니 오전 7시 32분이네요. 새빨간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악에 받쳐 미니 홈피에 글을 휘갈겼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 저는 삶의 철칙을 하나 정했습니다. 만인에게 공개되는 SNS에 헤어진 연인을 향한 비난 혹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이별 토로 글만큼은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겁니다.

당시엔 가슴 속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공개적인 비난 글을 올려 이를 대리 해소하려 했었는데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왜냐고요? 다름 아니라 당시 여자친구가 만인에게 공개된 제 글을 보고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절대 남에게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글이 결국 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준 셈이죠.

시간이 흘러 SNS의 주류가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SNS에서는 헤어진 연인을 겨냥한 듯한 메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남자가 그리도 좋더냐. 천벌 받을 거야^^” “몸과 마음 다 줬더니 돌아오는 건 배신과 상처뿐이네. 나쁜 놈”처럼 헤어진 연인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장문의 글에서부터 “굿바이, 영원히 안녕”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처럼 헤어진 연인의 관심과 자극을 유도하는 한 줄 글귀까지 다양합니다. 경험자의 한 사람으로 말씀드리자면 모두 공개적인 감정 분출을 통해서나마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위안받으려는 발버둥으로 느껴집니다.

SNS에 글을 쓰고 헤어진 연인이 봐주길 바라는 심리는 비겁한 겁니다. 화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직접 털어놓을 용기는 없으면서 상대가 내 분노와 슬픔을 알아주고 자극받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니까요. SNS 글을 본 친구들이 “다시는 그런 놈 만나지 마. 솔직히 처음부터 별로였어” “잘 헤어졌다. 그런 애는 너랑 정말 안 어울려” 같은 댓글을 달아주는 데 잠시나마 위안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글의 타깃이 된 헤어진 연인은 상처만 받을 겁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헤어진 연인에 대한 감정을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설하지 마세요. 헤어진 연인을 욕하고 싶으면 용기를 내 상대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세요. 그럴 자신이 없다면 친한 친구들을 만나 한풀이를 하든가요. 상대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면 직접 만나서 매달려 보세요. 그게 한때는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예의입니다.

연애를 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SNS에서만큼은 참아주는 게 현명합니다. 요즘 진정한 맛집을 알려주는 글을 찾으려면 포털 사이트에 ‘○○(지역명)+맛집’ 대신 ‘○○(지역명)+오빠랑’이라고 검색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SNS에 애정행각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염장질’이 많이 올라와 있죠.

이런 염장질은 연인이 헤어지는 순간 거의 대부분 삭제돼 종적을 감춥니다. 이별만으로도 슬픈데 SNS에 남아 있는 둘만의 과거 행적을 일일이 찾아 지우는 순간에는 슬픔이 배가되겠죠. 특히 미혼 연인끼리 호기심에 혹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며 웨딩카페에 가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찍은 사진이나 스킨십 진한 사진 같은 건 절대 SNS에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훗날 다른 이와 결혼을 한다면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SNS에 잔존해 있는 ‘흔적’을 지워주는 전문 업체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지요.

연인이 SNS에 사랑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에게 확신이 없구나”라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사랑은 둘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고 확인받아야 하는 사랑이 더 불완전할 수도 있어요. 진정한 사랑은 둘만 소중하게 간직해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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