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모두가 털린 신용 공황, 주민번호도 바꿔야 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KB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 등 3개 카드사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신용카드 대란 속에서 또 다른 신종 범죄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경찰청은 농협과 신한은행의 인터넷뱅킹 이체 정보를 바꿔치기해 9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조선족 김모 씨 등 2명을 구속했다. 피해를 본 81명은 신종 해킹 수법인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꼼짝없이 당했다. 기존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주겠다고 속여 65명으로부터 4억1000만 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일당도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고 있다. 총체적인 ‘신용 공황(恐慌)’ 상태라고 부를 만하다.

3개 카드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추가로 정보가 흘러나간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1700여만 명에 이르는 피해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객정보가 유출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시중에 퍼지지 않았다는 설명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유출 정보는 전량 회수돼 부정 사용의 가능성은 없다. 카드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고 장담했지만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고 있다. 카드를 해지 또는 교체하느라 금융회사 창구는 북새통이다.

김대중 정부 때 얼어붙은 내수를 살릴 요량으로 규제를 풀어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해 결국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것이 2003년 카드 사태다. 신용카드를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던 얄팍한 정책은 카드 사용을 부추겨 가계에 큰 부채를 안겼다. 이 정부에서는 카드사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하는 바람에 많은 국민이 금융 범죄에 노출되는 사태를 만들었다. “모든 정보가 다 털렸으니 내 주민번호라도 바꿔야 할 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신용이 쌓이지 않으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미리 신고하지 않고 주(州)를 옮겨 여행하는 경우에는 승인이 거절돼 카드를 쓰지 못하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금융사들이 분실 사고나 정보 유출을 걱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개인정보 보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린 카드사의 경쟁이 빚어낸 것이다.

3개 카드사 사장들이 사퇴하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해서는 안 된다. 국민 탓을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새누리당에서조차 정부 경제팀 경질을 촉구하고 나설 정도다. 신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는데도 당국자들이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으면 국민의 분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KB국민카드#롯데카드#NH농협카드#고객정보 유출#신용카드#금융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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