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메신저 창에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이 쏟아졌다. 상대방은 중국에 있다는 개인정보 판매 브로커. 단어들의 뜻을 묻자 ‘고객’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1차 완콜 실시간은 티엠(TM·텔레마케터) 직원이 콜을 돌려서 대출을 얼마나 원하는지 상담한 뒤 만들어 드립니다. 하루 전날 부결은 대출 신청자 가운데 부결난 사람들 (해킹)작업해서 가지고 오는 겁니다. 아! 필무는 전화했는데 ‘필요 없다’고 한 사람들이고요.”
샘플을 요청했다. 곧바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대출희망액 등이 적힌 명단 2, 3개가 날아왔다. 몇 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간 끝에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되자 브로커는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돈은 무통장 입금으로 해주세요. 아는 사람 이름 빌려 쓴 통장이거든요. 참, ‘○○○○(메신저 프로그램)’ 아이디도 대포입니다.”
흥정이 오간 뒤 정보의 ‘수위’가 낮은 아웃바운드(다수에게 전화를 거는 마케팅 방식) 명단 3000개를 6만 원에 입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 어지간한 정보는 모두 들어 있었다.
‘신규 매출’을 올린 브로커에게 문제가 된 카드3사 정보 유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넌지시 물었다. 비아냥거리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전부터 카드사 디비(DB)를 취급하는 사무실은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공식적으로 적발이 되니까 난리법석인데…이쪽(개인정보 유통 시장)에서 봤을 때는 웃기는 일이죠.”
카드 사태로 한국이 단속을 강화한 것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개인정보를 팔든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를 치든 결국 한국에서 돈 벌어다 중국에서 펑펑 쓰는 것 아닙니까? 중국 공안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죠. 만약 잡혀도 대가리는 거의 잘 안 잡히고 꼬리가 잘리죠.”
이상은 토요일인 25일 오후 6시 동아일보 취재팀이 약 3시간에 걸쳐 중국에 있는 개인정보 판매 브로커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일부 표현은 그대로 적었다.) 그와 나눈 대화록을 다시 읽을 때는 난생 처음 듣는 표현들이 재미있었다. 남의 정보를 이렇게 쉽게 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화록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흥미는 사라지면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최근 수년간 발생한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감안할 때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의 ‘신상’은 모두 털렸다고 봐야 한다. 유출된 정보는 때로는 날것 그대로, 때로는 가공을 거쳐 반복적으로 판매된다. 어제 걸려온 대출 안내전화에 작은 ‘관심’을 나타냈다면 그 정보의 가격은 몇 십 배까지 오르며 ‘고급 정보’가 되는 상황이다. 단 한 번이라도 유출된 정보는 이렇게 확대 재생산되며 ‘무한 유통’된다. 한 개인의 정보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시대인 셈이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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