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였다. 오사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녀는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쳐도 외국에서까지 한복을 입으리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한복을 입는 게 번거로워서 결혼식 같은 큰 행사가 아니면 입어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녀가 해외여행에 한복을 챙겨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외국에 나갈 때는 오히려 꼭 한복을 챙겨요. 그래야 우리나라 옷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보여주지요. 외국 사람들도 우리 옷을 보면 참 좋아하거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하와이에서 겪은 일이라며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아주 오래전 하와이로 여행 갔을 때 한복을 입고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가 “옷이 매우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면서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인 운전사는 이런 아름다운 옷을 본 것만으로도 즐겁고 고맙다면서 끝내 요금을 마다하여 할 수 없이 그냥 내린 적이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에서도 어디를 가나 그녀의 모시옷은 빛났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그녀의 옷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나까지도 한복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바라보는 한복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화사하고 고상했다. 그녀가 굳이 한복을 챙겨 오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30년째 인사동 한옥에서 ‘양반댁’이라는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그녀는 일 년 열두 달 항상 고운 한복 차림이다. 한복과 한옥 그리고 한정식, 말 그대로 의식주 모두 전통적인 우리 것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즐기기 위해 인사동을 찾는 것인 만큼 그런 분들을 위하여 작은 노력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 오는 손님은 그녀의 차림을 보면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이에요? 꼭 명절 같아요”라고 감탄한다. 사실 요즘에는 명절에도 한복을 잘 입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철에 따라 격식을 갖추는데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는 화려한 비단 치마저고리로 멋을 낸 모습이 마치 한 송이 모란꽃을 보는 것 같다.
내일은 설 명절이다. 한복을 자꾸 입다 보면 익숙해져서 불편한 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힘입어 나도 이번 설에는 장롱 속 한복을 꺼내 볼까?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명절 기분은 제대로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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