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닭고기 전문기업 하림 김홍국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AI가 위험하다면 나같은 사람부터 제일 먼저 사업 접지요”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은 2003년 국내 처음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통닭집 사장과 양계농가 주인이 매출 하락으로 자살을 했다. AI 바이러스가 발견될 때마다 영세 자영업자와 농가가 타격을 받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은 2003년 국내 처음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통닭집 사장과 양계농가 주인이 매출 하락으로 자살을 했다. AI 바이러스가 발견될 때마다 영세 자영업자와 농가가 타격을 받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설이 왔어도 설 상조차 제대로 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자식같이 기르던 닭을 땅에 묻은 양계농가들과 방역작업으로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한 공무원들도 그중 일부일 것이다.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의 김홍국 회장(57)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일본에 갔다가 설 전날인 30일 늦게야 귀국했다. 하림 삼계탕을 수입하고 있는 일본 회사가 혹여 이번 사태로 수입 중단 조치를 내리지 않을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급히 떠났다가 돌아온 길이라고 했다. 지난해 하림그룹의 하루 평균 닭고기 생산량은 90여만마리로 국내 닭고기 시장의 30%대를 점유했다.

인천공항에 내린 그를 30일 오후 9시 서울시내에서 만났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닭값이 최대 30%가량 떨어졌다”면서도 “AI는 이제 매년 겨울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일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경험이 쌓여 양계농가나 방역당국도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바깥에서 너무 호들갑을 떨어 위험이 과장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가 AI를 ‘불가항력적인 일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원인을 ‘철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AI가 최초로 발견된 것이 전북 고창군 동림저수지에 머물던 철새인 가창오리 떼였던 것처럼 매년 겨울이나 봄에 시베리아나 중국에서 한반도로 날아오는 철새 중 AI에 이미 감염된 경우가 있다. 철새들은 면역력이 강해 문제가 없다. 문제는 하늘에서 바이러스가 섞인 똥을 떨어뜨린다는 거다. 철새들이 지나간 비닐하우스 지붕이 새까맣게 똥으로 뒤덮이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는 물론이고 메추리 꿩까지 감염된다. 철새의 이동성을 감안할 때 확산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김 회장은 “다행히 아직 사람에 의해 바이러스가 옮았다거나 농장과 농장 간에 퍼졌다는 뉴스는 없다. 이는 그동안 경험을 쌓아온 방역당국과 농장 주인들이 비교적 잘 대처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AI는 조류독감이 아니라 ‘언론독감’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좀 유난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방역망이 뚫렸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날아다니는 철새에게 무슨 방역망이 있을 수 있나. ‘방역망이 뚫렸다’는 말을 쓰려면 농장과 농장 사이에 전염이 되었다거나 사람이 바이러스를 몸에 묻혀 다른 지역으로 옮겼을 때 써야 한다. 올해의 경우 지금까지는 AI 감염을 조기에 발견했고 재빨리 도살처분한 뒤 매몰도 잘했다. 이후 소독작업과 통제작업도 잘한 편이다.”

국내에 AI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03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였다. 당시 전국을 휩쓸었던 AI는 이후 2∼3년 주기로 지금까지 네 차례 발견됐다. 봄에도 있었지만 겨울에 발생한 경우 매번 100일을 넘겼다. 그때마다 도살처분된 가금류는 최소 280만 마리, 최대 1020만 마리였다. 도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쓰인 세금만도 최소 582억 원, 최대 3070억 원이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사람도 건강상태에 따라 감기가 심하게 걸릴 수도 있고 며칠 앓다가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것처럼 철새들도 매년 상태가 다를 수 있다. 올해에는 심하게 걸린 경우 같아 보인다. 이번에 서해안에 피해가 집중된 것은 댐이나 저수지가 많아 철새 오리 떼가 많이 몰렸기 때문이다. 늦어도 3, 4월 철새가 한반도를 떠나는 시점이 돼야 끝나리라 예상하고 있다.”

2003년 하림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AI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김 회장은 “국내 AI 공포가 과장되고 있다”고 거듭 우려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사람이 AI에 걸려 입원을 했다거나 하다못해 약을 먹었다고 보고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일부 학자들은 AI에 걸린 닭똥 1g으로 100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둥 실험실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공포심을 과도하게 조장하는 이야기이다. 정말 위험하다면 나 같은 사람이 제일 먼저 사업을 접지 않겠느냐.”

이어 “심지어 조류독감의 위험성이 인간독감의 위험성에 비해서도 과장되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50만 명이 계절성 독감으로 사망한다. 한국도 일반 독감 사망자가 매년 4000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독감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독감보다 AI에 대해 더 떠들썩하다.”

그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광우병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과학적 근거와 정확한 사실 위에서 균형적인 판단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AI가 발견되지만 우리처럼 떠들썩하지 않다. 공중파 TV가 헬기타고 도살처분 장면을 생중계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김 회장은 “매번 AI가 발견될 때마다 영세 농가와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제일 안타깝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워 통닭집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일로 2003년 때처럼 자살하는 통닭집 사장이나 양계장 주인이 나올까 걱정된다. 양계농가는 도살처분 보상금이라도 받지만 통닭집은 보상도 못 받는다”고 했다.

기자가 “국민 건강권 차원에서 바이러스 위험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AI 바이러스는 햇볕에서도 죽는다. 열에 굉장히 약해 60도부터 죽기 시작한다. 섭씨 75도 이상에서 5분간 열처리하면 모두 죽고 끓는 물에 넣으면 1초도 안 걸려 죽는다. 세계보건기구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시중에 유통되는 닭이나 오리는 AI로부터 절대 안전하다. 우리는 AI가 아닌 일반 가축 질병에 걸린 가금류도 도계 과정에서 엄격하게 검사하기 때문에 시중에 상품으로 나갈 수 없다.”

열한 살 때이던 초등학생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닭으로 키워 한 마리에 10원씩 하던 병아리를 마리당 250원에 팔았던 일로부터 ‘닭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는 김 회장. 일찍이 고등학교(전북 익산농고) 3학년 때이던 18세에 사업자등록을 내고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익산에 농장을 차린 게 하림식품의 시초다. 지금은 천하제일 팜스코 선진 농수산홈쇼핑 등의 계열사를 두며 4조 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축산업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7월에는 미국내 업계 규모 19위 닭고기 회사 ‘앨런패밀리푸즈’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에도 나서고 있다.

그는 “미국인들의 고기 소비량을 보면 닭고기가 1인당 연간 40kg으로 제일 많고 쇠고기(25kg) 돼지고기(20kg)가 뒤를 잇는다. 우리는 돼지고기가 19kg으로 제일 많고 닭고기 11kg, 쇠고기 10kg 순이다. 이에 비해 생선 소비량이 1인당 50kg에 달한다. 어쨌든 생활수준이 올라갈수록 탄수화물 중심에서 단백질 소비로 주식 섭취 패턴이 바뀐다. 농업이야말로 블루오션, 창조경제다. 자동차 컴퓨터 없이는 살아도 먹지 않고는 못 사는 거 아닌가. 더구나 갈수록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기자가 “닭고기에 항생제가 많이 들어 있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는 “전혀 없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면역력이 약한 초창기 병아리 때 쓰긴 한다. 하지만 극히 소량이다. 항생제는 시간이 지나면 병아리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일주일 지나 혈중 농도를 체크하면 제로로 나온다. 또 법적으로 닭을 출하하기 일주일∼열흘 전에는 항생제를 못 먹이게 되어 있다. 우리 공장에 들어오는 닭들은 일일이 다 검사한다. 설령 항생제가 들어간 닭을 사람이 90 평생 매일 먹는다 해도 감기약 캡슐 하나 용량이 안 된다.”

하림이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은행 금리가 20%대까지 치솟았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 2003년 AI에 이어 익산 도계공장의 대형화재로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김 회장은 “지금도 언뜻언뜻 회사가 한순간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있다.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늘 ‘앞으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이라고 했다.

다시 화제를 AI로 돌렸다. 그는 “우리 직원들도 AI가 발견된 농장에서 도살처분 작업 등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감염된 경우는 없었다. 지금은 해열제라도 미리 먹고 일하지만 2003년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무방비 상태로 일했다. 그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AI로 인한 사망자는 1년에 40명이 채 안된다. 그것도 대부분 동남아와 중국에서 비위생적이고 밀집된 공간에서 닭이나 오리를 기르면서 빈번하게 똥이나 깃털 등에 노출돼 감염된 경우다. 식품을 섭취해 감염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사망자 절반이 인도네시아에서 나오고 있는데 알다시피 그 나라는 섬이 1만8000개나 되고 시골에 가면 병원이나 약국도 제대로 없다. AI에 감염된 가금류가 나와도 우리처럼 도살처분을 하거나 소독 같은 것도 안 한다. 그런 나라와 우리는 상황이 같지 않다.”

갑자기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국민 여러분 닭, 오리 익혀 먹으면 절대 위험하지 않습니다!”

:: 김홍국 회장은 ::

1957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으며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대통령인사자문 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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