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파티 끝났다”는 부총리, 계속 파티 중인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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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와 북유럽에서는 공기업도 최고의 경영효율 자랑
정치오염, 부처외풍 차단이 열쇠… 낙하산 인사 확실히 끊어줘야
‘파티 끝, 나는 빼고’ 절대 성공 못해… “대통령이 결심하고 솔선하시라”
현오석 조원동 용감히 조언해야

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이용 편의성에서 ‘8년 연속 세계 1위’인 인천공항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순이익 등 경영 효율성에서는 세계 최고다. 창이공항은 겨울올림픽을 치르는 러시아 소치 주변의 4개 공항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베이징 등 중국의 9개 공항을 포함해 12개국 25개 공항을 컨설팅한다. 싱가포르항 역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항구다. 세계 25개 항구가 이 항만공사의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컨설팅을 받으며 로열티를 지불한다. 둘 다 싱가포르의 공기업 지주회사인 ‘테마섹’ 산하에 있는 자회사다. 테마섹에 속한 대부분 공기업의 효율성이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테마섹은 최고의 민간전문가를 공기업 사장으로 뽑은 후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사장을 평가할 때는 자기자본수익률(ROE) 등 순수 경영지표만 본다. 그러다보니 민간회사처럼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효율성 높기로 유명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공기업도 경영자율을 철저히 보장한 후 책임을 따진다.

우리 공기업은 그렇게 변신할 수 없을까. “안 된다. 취임 직후부터 ‘기업이라면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일’을 집행하라는 지시가 주무 부처에서 내려온다. 안 할 수 없다. 사장의 지도력이 일단 훼손되고 나면 노사개혁, 경영혁신은 거의 불가능하다.” 민간기업 출신으로 공기업 사장을 지낸 한 사람의 말이다.

코레일 파업 이후 공공기관 개혁이 최대 의제가 됐다. 핵심문제는 ①누적 부채 ②과잉 복지 ③낙하산 인사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① ②를 구분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공기업 부채는 정부 예산의 1.4배 규모(493조 원)다. 영업이익으로는 이자조차 못 갚는다. 공기업 경영이 방만한 것은 분명하지만 복지나 임원 성과급 때문에 이토록 빚을 질 수는 없다. 정부가 놔두지 않는다. 진짜 주범은 4대강과 경인운하, 세종시와 혁신도시, 임대주택, 해외자원개발 등 예전 정권이 추진한 국책사업이다. 공공요금 억누르기도 큰 축이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 때 일이어서 전문가들은 그냥 ‘MB 부채’라 부른다.

‘타산은 안 맞지만 꼭 필요한’ 공익사업이 당연히 있다. 이 경우 집행자인 공기업이 아니라 사업주인 정부가 손익을 책임지도록 용역 계약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예산은 국회 통제를 받다 보니 손쉽게 공기업을 윽박질러 회사채를 찍게 하고 이자비용도 떠안겼다.

물론 과잉복지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부채를 복지 탓으로 돌리면 공기업만 ‘나쁜 놈’으로 몰아 정부 간섭을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획재정부엔 경영효율을 끌어올릴 만한 ‘간섭 능력’이 없다. 주무 부처들의 간섭은 효율을 해치는 요인일 뿐이다. 엉터리 진단은 엉터리 처방을 낳는다.

손실이 뻔한 국책사업의 강요가 가능한 것은 낙하산 인사를 통해 형성된 나쁜 지배구조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 MB정부의 낙하산을 정면 비난했지만 취임 후엔 ‘국정철학 공유’를 내세워 이를 정당화했다. 그 결과가 전문성 없는 낙하산의 유례없는 급증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나쁜 지배구조를 끊는 방법으로 싱가포르 모델을 제안한다. 테마섹 같은 지주회사를 세우고, 사업성이 짙은 공기업들을 자회사로 편입한 후, 지주회사 이사회가 전권(全權)을 갖고 자회사 사장을 뽑고, 매년 경영을 평가해 사장 보너스까지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보다는 약하지만 현재 기재부 장관이 장악하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독립된 통합이사회’로 개편하는 길도 있다. 총리실 산하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모델이다. 지주 이사회로 가건 통합이사회가 됐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처럼 ‘독립성이 강한 민간인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한다. 정치 오염과 부처 외풍을 완전 절연(絶緣)하려면.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을 겨냥해 “이제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치권의 ‘낙하산 파티’는 예외인 것 같다. 기재부도 대책이라고 내놨지만 낙하산에 대해선 감히 언급조차 못했다. 다른 부처들은 혹여 ‘공무원 낙하산 기회’가 없어질까 봐 오히려 전전긍긍이다.

공기업 정상화를 위해선 대통령이 지배구조 개혁의 긴절함을 인식하고 ‘나부터 파티를 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임기가 아직 초반일 때 변화를 추동해야 부채 구조조정도, 노사개혁도, 필요할 경우 민영화도 가능하다. “파티는 끝났다. 단, 나는 빼고” 방식은 절대로 성공 못한다. 대통령에게 그런 용감한 조언을 할 책무가 부총리와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 두 사람에게 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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