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꿈의 색깔로 물들이는 시각.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앞바다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신비한 빛을 내뿜는다. 사진 속 나무는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족과 교감하는 영혼의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아, 경이롭구나’ 감탄하는 한편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궁금증도 불러일으킨다. 대답을 얻기 위해 작가노트와 창작과정을 찍은 동영상을 살펴봤다.
‘마른 나뭇가지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다가 자연광, 플래시, 서치라이트 세 종류의 빛을 사용하게 되었다. 생명나무의 빛은 나무의 겉모습이 아니라 존재의 아우라(독특한 기운)를 드러내기 위한 빛이다. 그래서 나는 그 빛이 요란하기보다는 오묘하길 바랐다.’―이정록
동영상에는 작가가 바다에 나무를 설치하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주에 걸쳐 갖은 고생을 감수하면서 사진을 찍은 과정이 담겨 있었다. 디지털 보정한 작품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수정도 가하지 않은 진짜 사진이라는 점을 증명해준 셈이다. 아울러 작가는 사진을 찍을 장소와 시간만 선택할 뿐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진정한 주체는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이 만나는 극적 순간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빛을 탐구했던 시인 괴테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좀 더 많은 빛이 들어오도록 두 번째 창의 덧문을 열게. 너무 어둡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시인에게 빛은 곧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에 생명의 빛을 선물한 이정록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다. 빛을 내뿜는 삶을 뛰어넘어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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