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온 2013년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는 보도의 첫 관문인 ‘기자의 선택’을 통과하지 못했다.
자료에는 지난해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월 0.76권), 학생은 연간 32.2권(월 2.69권)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수험서나 만화, 잡지는 제외했다. 약간 흥미를 끈 분석은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2011년보다 0.7권 감소한 반면에 학생은 같은 기간 8권이나 늘었다는 정도다.
한 달에 책 1권을 읽지 않는 나라. ‘책 읽지 않는 대한민국’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자식들에게는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요해서인지 학생들의 독서량이 월 3권에 가까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독서량을 굳이 외국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책의 미덕을 몰라 타인의 판단에 기대는 것 같아 마뜩잖다.
요즘 ‘텍스트’가 품는 정보의 양에 새삼 놀라고 있다. 오랫동안 신문 뉴스를 다루다가 한 달여 전부터 채널A에서 방송 뉴스를 만들면서 다시 깨닫는 것이다. 물론 화면이 주는 생생함이 있다. 또 텍스트로 옮기기 힘든 장면을 정확히 전달하는 힘도 있다. 다만,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상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애초부터 비교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주처럼 보인다.
소설 ‘태맥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과 함께 재작년 소설 속 ‘남도여관’의 모델이 된 보성여관의 복원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조정래 선생은 ‘책 선물’을 경품으로 걸고 퀴즈를 하나 냈다. 보성의 수많은 꼬막식당 중에서 그 상호 때문에 줄을 길게 서는 식당이 있다며 맞혀 보라는 것이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상호를 맞혔다. 책이 가진 미덕인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힘 때문에 20여 년 전 읽은 책 속 등장인물 이름을 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 보니 출판사가 책을 처음 펴내면서 찍는 초판 부수는 2000부 내외다.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나 아이디어, 문학적 상상력을 경험하는 사람이 4800만 인구 중에 20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0.004%다. 이 정도면 책에서 읽은 것은 ‘당신만 아는 지식’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치고 이른바 블록버스터형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 단순하고 섬세하지 못한 스토리 전개에 감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의 촉수가 예민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출판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생의 다양한 결을 더 세심하게 즐길 것이며, 현실을 사는 실용의 지식도 더 풍부하게 캐낼 것이다. 누군가 먼저 깨달은 지혜를, 그렇게 손쉽게 경제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외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만은 꼭 전수해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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