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휴대전화 기기 변경을 하러 동네 가게에 갔더니 단말기 가격을 고스란히 다 내란다. 정부가 보조금을 규제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는 2010년부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대해 총 1000억 원을 부과하는 과징금 정책으로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억제해왔다.
예전 같으면 단말기는 거의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필자처럼 통화량이 많아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그런데 정부는 과징금 부과에 한술 더 떠 아예 법안으로 만들 움직임이다.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현장을 알고 하는 정책인지 알 수 없다. 소비자인 내게 손해만 안겨 주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이름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단통법)’이라는 제법 긴 제목의 법안이다. 이동통신 이용자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 지원 금지, 단말기 제조업자의 통신사업자에 대한 차별적 장려금 지급 금지 조항을 담고 있다. 법안을 국회에 낸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쉽게 말해 ‘보조금을 주려면 모든 소비자에게 똑같이 주라’는 취지를 담은 것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누구한테는 단말기를 싸게 주고 누구한테는 비싸게 주는 식으로 차별을 한다면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다. 남들은 50만 원 할인받았다는데 나만 30만 원 할인받는다면 뭔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가 같지 않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똑같이 깎아주라고 하면 통신사들은 모든 소비자에게 50만 원을 깎아줄까, 아니면 30만 원만 깎아줄까? 아예 안 깎아줄까? 아마도 조금 깎아주거나 아예 안 깎아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통법’은 소비자를 위한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이다.
정부가 이 정책을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누르면 누를수록 요금을 인하하려는 경쟁이 일어날 거란 판단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난센스’다. 업체에서 요금 인하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효경쟁이니 요금인가제니 하면서 요금 경쟁을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에게 단말기 보조금을 주지 못하게 하면 통신사들의 배만 불려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단말기 보조금이 아예 금지됐었다. 미래창조과학부 말대로라면 그 기간에 통신사들의 요금 인하 경쟁이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통신사들의 이익만 엄청나게 늘었다.
우리 소비자들은 기업이 경쟁하길 원한다. 품질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봉사하길 바란다.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어서 소비자인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정부가 해왔던 일은 실질적으로 가격인하를 막는 일이었다.
그나마 보조금으로라도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는 그것마저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미래창조과학부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가. 통신사인가 아니면 우리 소비자인가.
보조금 때문에 단말기를 지나치게 자주 교체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 운동가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은근히 화가 치민다. 공무원이 소비자의 ‘상전’이라도 된단 말인가. 단말기 교체 주기가 빠른지 아닌지는 소비자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기업은 보조금을 줄만 하니까 주는 것이고, 소비자도 세상의 추세를 봐서 교체할 만하니까 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무원이 할 일이 있다면 쓰지도 않는 지방공항을 만들거나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일부터 줄이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미래창조과학부에 촉구한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폐기하라. 우리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기업들의 경쟁을 장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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