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등을 밀며 바람이 분다 개개비 몇 발끝 들고 염낭게 갯벌 물고 뒤척거린다 날마다 제 가슴 위에 거룻배 한 척 올려놓는 갈대밭 산다는 건 갈대처럼 천만번 흔들리는 일이었으나 실패한 삶도 때론 무엇인가 남긴다 남긴다고 다 남는 것일까 순천(順天)은 벌써 나를 알아버린 듯 마음의 물결까지 출렁거린다 섬은 발목 잡혀 꿈쩍 않는데 물거품이 해안까지 따라온다 언제 꽃을 바람처럼 피운 갈대들 그들이 환하다 문득 느낀다 내 어둠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낮게 엎드린 포구 수평선 바라보다 나는 겨우 세상은 공평한가 묻고 말았다 방파제 너머 파도가 밀려간다 밀려간 것은 물결만이 아니다 날마다 내 속으로 밀려온 갈대들 오늘은 대대포에 들고 말았네
순천만은 갈대숲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연안습지로, 대대포는 거기 자리한 포구다.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이 바람에 아득히 흔들리고, 그 바람결에 ‘개개비 몇 발을 든다’. 갈대밭에 부려진 거룻배 한 척도 기우뚱거리리. 그 풍경 속에서 화자는 ‘산다는 건 갈대처럼/천만번 흔들리는 일이었다’고, ‘실패한 삶도 때론 무엇인가 남긴다고’ 생각하다가 돌연 고개를 젓는다. ‘남긴다고 다 남는 것일까!’ 투항(投降)에서 저항(抵抗)으로의 간극이 물결처럼 미세하게 맞물린다. ‘순천은 벌써/나를 알아버린 듯 마음의 물결까지 출렁거린다’.
순천(順天)은 맹자 왈,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에 유래를 둔 지명이란다. 하늘의 뜻에 따르라고? 팔자에 복무하라고? 그래, 하늘은 다 알고 있겠지. 그러나 하늘은 입을 다물고 있다지 않는가.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지 않는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데, 그대로 두고 있지 않는가! 하얗게 꽃 피운 갈대들이 바람결에 빛을 산란하는 듯 환하게 떠오르자 화자는 ‘문득 느낀다 내 어둠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적하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도 아물지 않는 상처여, 뒤척거리는 마음의 쓰라린 중얼거림이여. 자연 풍경과 마음 풍경이 세밀하게 어우러진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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