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애 보는 아빠’ 전성시대다. TV를 틀면 채널마다 연예인 아빠와 귀여운 아이가 등장한다. 아빠들은 토크쇼에선 아이의 재치 넘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집안 일상을 담은 촬영에선 아이를 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쩔쩔맨다. 매주 어디론가 데려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아빠끼리 어울리면서 아이와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방송사들이 ‘애 보는 아빠’ 포맷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 시청자인 여성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하사극 같은 몇몇 예외를 빼고 나면, 대한민국 TV 시청률은 순전히 여자들 마음이다.
반면 남성의 반응은 뜨악한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남성이 리모컨을 쥐었다가 아내의 “채널, 돌리기만 해봐!” 경고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왜 동화 같은 쇼를 보여줘서 여자들을 현혹시키느냐고 불만을 내뱉는다.
심지어는 TV 시청 경험을 현실에서 재현하고픈 아내의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연예인 아빠가 해주었던 것처럼 멋진 이벤트로 감동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 남편의 어쭙잖은 흉내가 그녀들의 부푼 기대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왜 아빠와 아이가 나오는 프로에 환호하는 것일까. 그들이 반길 만한 요소를 이토록 두루 갖춘 설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자 아이돌만 빼고는 다 있다. 잘생긴 데다 탁월한 능력에 인간미까지 갖추었으나 집안에선 서투른 남자 연예인에, 그를 빼닮아 귀엽고 총명한 아이, 유명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 양념으로 등장하는 아내와의 사랑과 갈등, 궁극적으로는 좌충우돌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더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 거듭나는 남성.
이런 모든 요소가 여성의 오랜 꿈이다. 그 꿈은 이미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기도 하다. 많은 남성이 이제는 집에서 리모컨만 쥐고 쉬겠다는 상상을 감히 하지 못한다. 요리며 청소는 물론이고 그간 아내에게 맡긴 채 나 몰라라 했던 육아와 교육까지 손수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다. 월급 갖다 주는 것으로 남자의 역할은 끝난다고 믿었던 예전 세대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셈이다.
여성이 바라는 남자의 완성,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눈동자는 바로 ‘가족을 지켜주면서도 부드럽게 통하는 남자’다. ‘애 보는 아빠’ 프로그램은 비록 설정일망정 그 꿈을 눈앞에 펼쳐주기에 대리 만족이라도 하고픈 여성들을 TV 앞으로 바짝 끌어들이는 것이다. 입을 헤벌리고 화면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따져봐야 치부책의 점수만 깎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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