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낚시질 배우겠다는 北에 물고기 주는 南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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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지원하는 식량이 2007년 선박에 실리는 모습. 동아일보DB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이 2007년 선박에 실리는 모습.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햇볕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 대남담당부서인 통일전선부(통전부)였다. 한국 정부의 지원에 더해 많은 민간단체가 각종 대북지원 물자를 들고 줄을 서는 바람에 그 처리를 맡은 통전부 간부들이 부자가 됐다. 남쪽의 어떤 민간단체들은 통전부에 “제발 (지원을) 받아 달라”고 사정하는 수준이었다. 대북지원을 제대로 하느냐 여부가 단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통전부는 산하기관들까지 한국산 승용차 버스 화물차를 사용했다. 청사 건설과 보수, 직원용 아파트 건설도 남한 지원용품으로 해결했다. 심지어 공사 때 쓰는 삽과 양동이는 물론 직원용 목욕탕에서 쓰는 바가지조차 한국산이어서 평양 사람들은 “공화국 통전부인지 남조선 통전부인지 알 수 없다”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통전부는 시멘트와 건설자재 및 설비, 의복, 약품 같은 물자를 선호한다. 식량은 군이나 군수공업 종사자, 평양시민처럼 우선순위가 대충 정해져 있다. 비료도 각 지역 농촌에 배분해 보낼 수밖에 없는데, 농민은 가난해서 로비를 할 능력이 못 된다.

반면 시멘트는 북에서 곧 돈이다. 힘 있는 기관은 아파트를 지어 절반쯤은 간부들이 나눠 갖고 나머지는 분양해 돈을 번다. 그런데 시멘트 수입 허가권은 수도건설총국이나 2경제(군수공업)와 같은 중요기관들만 갖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시멘트나 건설장비가 왔다고 하면 사방에서 손을 내민다. 통전부는 뇌물을 챙겨먹고 이를 분배한다. 물론 수해복구 등의 명목으로 온 지원의 절반쯤은 피해 지역에 가기는 한다.

한국에서 오는 식품은 간부 공급을 담당하는 중앙당 재정경리부에 우선권이 있으며 나머지는 통전부 마음대로다. 의복이나 약품은 몰래 나눠 갖거나 큰손들에게 넘긴다. 통전부는 북한 주민들을 돕자며 모금해놓고는 자기들에게 물자를 갖다 주는 남쪽의 대북지원단체가 제일 고마울 것이다.

영유아 지원처럼 수혜자를 특별히 지정한 지원도 역시 알고 보면 남쪽의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영유아용 분유가 허약한 군인들의 영양 보충제로 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이를 넘어서 중앙당 간부 공급용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면 어처구니가 없다. 따라서 대북 지원 원칙의 첫째는 지원 물자를 어디에 쓸지를 북한 간부 입장에서 따지는 것이다.

간부도 좋고 주민도 좋은 것도 물론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쌀 포대는 내각 양정부에서 회수해 장사꾼에게 몰래 팔렸다. 2008년 포대 8장은 1달러에 팔렸다. 당시 연평균 40만 t이 지원됐으니 포대 값만으로도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을 챙긴 것이다. 방수가 잘되는 한국제 포대는 수십만 척의 목선들에 물돛 제작용으로 팔렸다. 그 덕분에 주민들은 남조선의 국호가 대한민국임을 잘 알게 됐다.

한국의 지원으로 돈을 만진 사람들은 대남 유화파가 될 수밖에 없다. 대북지원이 끊긴 2008년 이후 통전부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통전부 신입들은 선배들이 전하는 ‘꿈의 시절’을 학수고대할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지원물자 분배권을 군부에 준다면 군부도 유화파로 바뀔 것이다. 외부 지원이 특권층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은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어느 빈국에 가도 얼마나 빼돌려지는가가 문제일 뿐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자는 과거에 식량은 군에 흘러가더라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군과 민간을 구분하기 어렵다. 영유아가 튼튼하게 크면 결국 이들이 나중에 커서 군인이 된다. 허약한 군인도 그는 어느 백성의 귀한 아들이며, 제대하면 평범한 주민으로 돌아간다. 한 북한군 장교는 “한국 쌀을 군에 가장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김정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쌀을 먹으니 군인들의 심리가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인간은 굶을 때 밥을 준 사람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총을 쏘긴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북에서 살아보니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것은 결국 제일 힘이 없는 백성들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뺏어먹거나 훔쳐 먹고 살았다. 이것은 유사 이래 불변의 진실이다. 북한 내에 식량이 많으면 식량가격도 떨어졌다.

하지만 기자에게 지금 북에 식량지원을 해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북지원이 끊긴 지난 6년간 북한 주민들은 자력갱생으로 먹고 사는 방법을 더욱더 터득해왔다. 이제는 굶어죽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작년에는 태풍 피해가 없어 풍년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이 다시 식량지원을 한다면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급을 준단 이유로 다시 직장으로 불러내 조직생활을 강요할 것이 뻔하다.

대북 식량지원에 회의적인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 북한의 공장과 농촌에는 경영 자율성과 도급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대북지원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굶어죽지도 않는데 긴급 구호 성격의 ‘인도적 지원’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대북지원은 퍼주기 딱지가 누덕누덕 붙어 있는 인도적 지원에서 벗어나 북한의 ‘개발지원’ ‘개혁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인권법에 인도적 지원 항목을 넣느냐 마냐 같은 문제로 정치권이 다툴 필요도 없다. 김정은이 개혁을 해 인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데 그 개혁을 못 도와줄 이유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박 통일’은 준비 없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북한 개발지원의 핵심은 철도 도로 수자원 개발과 같은 인프라 구축과 생산 기술 지원이다. 여기에 더해 부정부패 가능성이 적은 물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포전 관리제(3∼5명 농민들에게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맡겨 수확 농산물 가운데 국가 납부 몫을 뺀 나머지 현물에 대해선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북한식 농업개혁조치)가 도입돼 농민들의 생산 의욕이 높아진 지금은 비료만 충분해도 북한은 스스로 먹고살 수 있다. 예방 백신이나, 수돗물 정제약 같은 것도 간부들이 뇌물 받고 빼돌릴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면 대북 식량지원이 재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북은 지도자가 바뀌고 세대마저 달라졌다. 김정은이 낚시질을 배우겠다는데, 우리의 인식은 물고기를 주던 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젠 대북지원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햇볕정책#대북지원#식량#김정은#개혁#이산가족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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