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소치 겨울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긴 스위스 알프스에서도 최고급 휴양지인 생모리츠입니다. 알프스의 휴양마을 중에선 가장 높아 ‘알프스의 하늘 아래 첫 동네’(1822m)로 불립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리산 천왕봉(1915m) 바로 밑쯤 됩니다.
산악의 날씨는 조변석개(朝變夕改)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지형 때문인데 알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생모리츠는 예외입니다. 연중 300일가량이 맑습니다(이걸 여기선 샴페인기후라고 부릅니다). 정말 특이한 곳이지요. 이란의 팔레비 전 국왕과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알프스에서도 유독 이곳 별장을 선호했던 이유입니다.
이곳은 높고 깊은 산중인데도 호수가 있습니다. 호수는 마을이 있는 엥가딘 계곡(동알프스 산맥)의 일부인데 빙하기의 유산입니다. 이 계곡엔 강 대신 많은 호수가 계단처럼 들어서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은 평지의 호반과 호수 건너 산중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호텔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있는데 ‘도르프(Dorf)’라는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산과 호수에다 날씨까지 청명하고 겨울엔 계곡 양편 산이 모두 스키장이니 생모리츠가 알프스 최고의 휴양마을이 된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뭐든 ‘세계 최고’ ‘세계 최초’가 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생모리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관광산업(tourism)이 시작된 건 산업혁명 직후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분리되면서 큰돈을 번 자본가들이 출현한 게 계기지요. 돈도 시간도 생겼으니 관광에 눈을 돌린 건데 그 선두엔 늘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인들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 알프스, 그중에서도 스위스의 알프스였습니다. 높은 산이 없고 눈과 빙하도 없는 섬나라의 영국인들에게 거대한 알프스 산맥은 최고의 볼거리였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중반 스위스는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귀족과 부호 문호가 즐겨 찾는 인기 관광지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알프스 관광은 한여름뿐이었습니다. 알파인스키(설산 비탈을 내려오는 스키)가 태어나지 않아 겨울엔 즐길거리가 빈약했기 때문이지요. 그걸 극복한 곳이 생모리츠입니다. 주인공은 마을 주민 요하네스 바드루트입니다. 때는 1864년. 그는 한여름 자기 집에 묵던 영국인(네 명)과 ‘내기’를 했습니다. 올겨울에도 다시 찾아와서 겨울을 즐긴다면 방값을 받지 않겠다고. 영국인들은 돌아왔고 멋진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 입소문을 냈습니다. 그게 생모리츠, 아니 알프스 겨울관광의 시작입니다. 스위스 최초의 전등이 이곳 쿨름(Kulm) 호텔에서 불을 밝힌 것이나 스위스 제1호 관광안내소가 여기 들어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겨울의 즐거움은 크로스컨트리스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눈썰매와 컬링, 스케이트 등 산악주민의 소일거리를 관광상품으로 다듬었습니다. 이에 앞장선 곳 역시 생모리츠였습니다. 유럽 최초의 컬링과 스케이트 선수권대회(1880년과 1882년), 봅런(봅슬레이의 전신)의 최초 질주와 유럽선수권대회(1890년), 최초의 설상경마(1907년)가 모두 이곳 생모리츠에서 열렸습니다. 1896년엔 알파인스키 기술을 창안한 츠다르스키(오스트리아)가 연습교본을 출간합니다. 그 덕분에 알파인스키는 전 유럽에 보급됐고 알프스의 겨울관광은 스키와 더불어 꽃을 피웁니다.
1928년. 드디어 알프스 겨울관광의 발상지이자 선두주자인 생모리츠에서 그 성공을 축하하는 샴페인과 폭죽이 터졌습니다. 겨울올림픽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겨울올림픽이 ‘심심한 겨울’이란 난제(難題)를 풀기 위해 알프스주민이 고안해낸 관광마케팅의 산물이기도 했음을.
엽서를 볼까요. 설산은 8km 스키트레일이 있는 코르바치 산(해발 3300m)이고 그 위로 스위스 국기와 오륜기가 나부낍니다. 독일어로 되어 있는 이 엽서는 86년 전 생모리츠가 개최한 제2회 겨울올림픽의 공식 포스터입니다. 한국이 겨울올림픽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한 역사적인 대회이기도 합니다.
다음 엽서는 눈과 스키의 명소인 일본의 ‘설국(雪國)’ 유자와 정(니가타 현)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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