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소치 겨울올림픽, 그리고 푸틴의 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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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후 러시아 첫 올림픽… 푸틴은 정상들 모인 자리에서 中-日 양쪽에 서비스 외교
‘겨울 평창, 여름 도쿄올림픽’ 성공대회위해 양국 손잡아야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소치 겨울올림픽이 무르익는 가운데 개회식을 둘러싼 정상외교도 나름 볼거리였다. 물론 주역은 개최국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정상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여러 나라 정상들이 귀빈석을 채웠다.

생각해보면 옛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처음 러시아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이 나라가 고난을 넘어 새롭게 번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대형 이벤트에 다름 아니다. 경기 시설은 물론이고 철도, 고속도로, 숙박시설이 모두 새로 건설됐다. 약 50조 원에 이르는 총 경비는 여름올림픽을 포함해 사상 최대라고 한다.

총리 직에서 일단 물러났던 푸틴 씨는 재작년 대통령에 복귀했다. 당시 선거 기간에 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개국 신문사 간부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그와 회견한 바 있다.

내가 북방영토 문제를 묻자 그는 일본어 유도 용어로 “히키와케(引き分け·무승부)가 좋다”고 대답했다. 갖가지 질문에 자료도 보지 않고 거침없이 답하는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 자리에서 듣진 못했지만 그가 대통령에 복귀한 큰 동기 중 하나는 소치 올림픽에서 호스트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의 머릿속에서 소련 시절이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굴욕적인 기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1979년 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들어가자 미국 등 많은 서방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다.

그 즈음 일본 정치를 취재하던 나는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당시 총리가 고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는 여론이 강한 속에서 그는 고뇌에 찬 결단 끝에 미국을 따랐다. 역시 대회를 보이콧한 한국의 상황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뒤의 격동기였다. 어느 나라든 대회 참가를 꿈꾸던 선수들은 눈물을 삼켰다.

‘반쪽 대회’가 된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다음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회 때는 소련 등이 보복 보이콧에 나섰다. 그런 시대가 끝나고 세계의 선수들이 다시 모인 것이 1988년 서울 대회였다. 그런 역사를 잘 알고 있기에 푸틴 씨는 겨울올림픽으로 사상 최다 국가가 참가한 소치 대회 개회식에서 큰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푸틴 씨는 한편으로 개회식에서 서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일중 정상과 각각 회담하고 양쪽 모두에 서비스했다. 시 주석과는 가장 먼저 만나 내년 ‘전승 70주년’ 행사 공동 개최를 재확인했다. 아베 총리에게는 가을 방일을 약속하고 회담 후에는 점심도 함께 했다. 2012년 일본 아키타(秋田) 현이 보낸 개를 데려와 아베 씨를 만나게 하는 마음 씀씀이도 보였다.

그런데 올림픽이라고 하면 4년 뒤인 2018년 평창 겨울대회가 있고 2020년에는 도쿄에서 여름대회가 열린다. 도쿄 올림픽은 1964년에 이어 56년 만이다.

1988년 서울 대회가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와 민주화를 세계에 각인시킨 것처럼 1964년 도쿄 대회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파멸에서 일어나 눈부시게 부흥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도쿄와 오사카(大阪) 사이에 신칸센이 개통된 것도, 도쿄에 고속도로가 생긴 것도 이때였다. 히로시마(廣島) 현에서 원폭 투하의 날 태어난 청년을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선택한 것은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의 호소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 지난 다음 도쿄 대회에서 보여야 할 것은 동일본 대지진에서 재기한 모습과 끝까지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의 모습일 것이다.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중국이나 한국과 으르렁거리면서 도쿄에서 ‘평화의 제전’을 열 순 없다.

한국도 일본도 우선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겨울대회와의 연계를 생각하는 게 좋다. 여러 분야에서 협력해 함께 분위기를 북돋워야 한다. 세계에서 평창에 오는 선수와 관객들을 일본에도, 그리고 도쿄에 오는 선수와 손님을 한국에도 이끌면 서로에게 큰 플러스가 된다.

한밤중에 주로 중계되는 소치 대회 소식에 나란히 수면 부족 상태인 한일 국민 간에 시차는 없다. 그만큼 가깝다는 의미다. 정치와는 분리해 우선 ‘겨울은 평창, 여름은 도쿄’를 표어로 하면 어떨까.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소치 겨울올림픽#푸틴#러시아#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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