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였다. 옆 사람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그의 앞에 앉은 사람이었다.
“바빠?”
“아니.”
“바쁘지 않으면 술 좀 따라봐.”
술잔이 비었는데도 상대방이 모르고 있자 앞 사람이 장난전화를 한 것이다. 그 이후 우리 모임에서는 빨리 술잔을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전화하랴?”, “전화 오기 전에 빨리 따라줘야지” 농담을 한다.
이것은 실없는 장난이지만 요즘은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한 세상이 된 것 같다. 모임에 나가면 예전과 너무나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전에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들 집중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만나도 만난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 일쑤다. 음식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서 누군가에게 보낸다고 수선을 떤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어딘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방금 들은 유머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전달하느라 분주하다.
이런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전하다. 그런데 역설적이다. 대화는 헤어지고 돌아와서부터 시작된다. 문자와 사진이미지가 날아들기 시작하는 것. 우리가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을 보내주며 새삼스럽게 또 다른 수다가 펼쳐진다. 얼굴 보고 함께 있을 때는 딴전을 피우던 사람이 휴대전화를 통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고 다정하다. 그런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이분은 지금 다른 사람 앞에 앉아 있으면서 내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학교에 다닐 때 습관적으로 국어시간에 영어 공부하고 수학시간에 국어 숙제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성적이 좋을 리 없다. 담당 과목 선생님 또한 기분이 나빠 화를 낸다. 수업하는 시간의 총량은 같을진대 국어시간에는 국어를 공부하고 수학시간에는 수학문제를 풀면 좋으련만!
마찬가지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 모처럼 서로 귀한 시간을 내지 않았는가. 잠시 휴대전화를 밀쳐놓고 마주보고 있는 사람과 정성스럽게 만나자.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사람과 사람이 만난 기쁨으로 가슴이 뿌듯하게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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