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홍정희와 ‘낭만에 대하여’

최근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19년전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고 있는 가수 지망생 홍정희 씨. SBS TV 화면 캡처

‘낭만에 대하여.’

1995년 가수 최백호가 발표한 이 노래는 한때 기성세대에게 ‘주제곡’처럼 불렸던 노래입니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렸거나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한 적도 없지만 인생을 뒤돌아보게 하는 가사와 허스키한 가수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어르신’들이 약주 한잔하면 “내가 아는 최신곡”이라며 즐겨 부르곤 했지요.

발표된 지 19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옛날 노래가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가 나왔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최백호의 ‘쇳소리’가 아닌 앳된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홍정희라는 이름의 참가자는 “낭만의 ‘낭’자라도 알까?”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려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구슬픈 목소리를 내며 그럴듯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 여성 참가자의 입으로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게 한 사람은 작곡가 겸 가수 유희열입니다.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자 홍정희의 프로듀서였던 그는 이 곡을 선곡한 이유에 대해 “아이돌 가수의 음악이나 요즘 유행하는 팝 음악 말고 이런 음악을 오디션 장에서 불러야 할 때가 왔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마치 “이런 음악 있는지 몰랐지?”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예상대로 방송이 나간 후 SNS에는 ‘낭만에 대하여’에 대한 문의 글들이 넘쳐났습니다.

최근 관객 동원 600만 명을 넘긴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도 옛날 노래들이 흘러나옵니다. ‘세샘트리오’와 여가수 권성희가 불렀던 ‘나성에 가면’부터 김정호의 ‘하얀 나비’, 채은옥의 ‘빗물’ 등 1970, 80년대 추억의 가요들이 스무 살 여주인공(심은경)의 목소리로 재해석됐습니다.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SNS에는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 언제 발표된 곡인지 ‘정체’를 묻는 글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요즘 들어 옛 노래들이 많이 들립니다. 단순히 먼지 쌓인 옛날 레코드판을 트는 것이 아니라 신세대들이 개성 있게 재해석한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마치 LP 음악을 ‘아이팟’으로 듣는 느낌이랄까요. 흔히 하는 추억 타령일 수 있지만 분명 지금 들어도 귀에 쏙쏙 꽂히는 옛날 음악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노래들이 재해석될 때마다 SNS에는 노래와 가수에 대한 문의가 이어집니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에 속하는 1990∼2000년대 노래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옛 노래에 대한 사랑이 호기심 차원을 넘어 소비(消費)로까지 이어집니다. 최근 끝난 미국의 대표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어워즈’에서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무대에 스티비 원더가 나와 듀엣곡을 불렀습니다. ‘기록의 나라’인 일본은 연말마다 음악 시상식에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 시대 히트했던 노래들을 차트 기록과 함께 반복해서 보여주곤 합니다. 내가 모르지만 내 윗세대는 아는 무언가라는 점에서 옛날 노래는 어쩌면 신비로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노래들은 과연 20, 30년 후에 지금 소비되는 옛 음악처럼 신비롭게 될 수 있을까요. 요즘 노래 중에도 분명 좋은 노래는 많습니다. 인디 밴드의 창의적인 음악부터 심금을 울리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 등이 하루에도 수십 곡씩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수의 아이돌 음악 위주로만 ‘소비’가 되다 보니 가수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닌 대중의 관심 혹은 유행이 돼버렸습니다. 극단적이더라도 관심을 받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이들의 목표가 돼 버렸습니다.

되도록 야하고 자극적이게 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검색어 순위 1위, 동영상 최다 조회건수 등 소기의 성과도 얻습니다. 그럴수록 음악은 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즘 노래가 옛날 노래를 이기지 못하는 딜레마 아닐까요.

김범석 소비자경제부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