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허승호]안철수캠프 합류 강봉균 前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대통령의 시시콜콜 지시가 경제팀 무기력의 근본 원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나라 곳간을 책임져 본 경험자답게 걱정이 많아 보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대해 “대통령 눈치는그만봐라. ‘직’을 걸고 경제팀의 리더십을회복하라”고주문하고싶다고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나라 곳간을 책임져 본 경험자답게 걱정이 많아 보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대해 “대통령 눈치는그만봐라. ‘직’을 걸고 경제팀의 리더십을회복하라”고주문하고싶다고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경제팀이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짜고 있다.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경제개발계획을 짜며 보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나(11일, 서울 여의도 소재 사무실) 정부 경제팀에 대한 충고와 우려를 들어봤다.

현 부총리 국민 위해 ‘직’을 걸어라

3선 의원을 지낸 후 재작년 정계를 은퇴한 그는 최근 ‘안철수 캠프’에 합류해 정치를 재개했다.

―현 부총리팀의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1999년 재경부 장관이 된 강봉균은 취임 석 달 만에 현오석 경제기획국장을 한직인 국고국장으로 좌천시켰다. 작년에 현 부총리가 선임되자 “무엇을 물어도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평가보다 충고를 하고 싶다. 얼마 전 현 부총리가 기획재정부의 선배 장관들을 저녁식사에 초청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김용환 전 재무장관이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체 10개 정책 중 대통령이 지시한 정책은 2개 정도였다. 나머지는 내가 구상해 보고하고 집행했다. 행정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너무 시시콜콜 지시하는 대통령이 문제의 뿌리지만, 그래도 부총리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지 어찌 대통령이 더 잘 알겠는가. 현 부총리에게 대통령의 신임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위한 부총리’라는 사명감이 훨씬 중요하다. ‘직’을 걸고 무기력증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정부 경제팀은 팀플레이가 생명이다. 부총리가 자율적 정책결정권을 확보해야 리더십이 생기고 서비스규제 완화 등 이해관계가 얽힌 정책도 추진할 수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정치 재개의 변(辨)을 먼저 들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했다. 좋은 접근이며 동의한다. 나는 그중 ‘정치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며 본질적이라고 본다. 한국 정치의 근본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으니 여당 의원은 충성 경쟁에 빠져 타협의 재량권을 자진 반납했다. 청와대 지시가 없으면 협상이 안 된다. 야당도 이걸 아니까 툭하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요구한다. 여기에 당내 민주주의의 실종이 겹치면서 이견수렴, 갈등완화라는 정치 본래의 기능이 실종됐다. 법안 및 예산 처리 등 입법부 본연의 임무조차 안 한다. 또 제왕대통령 시스템에서는 대선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대선 승리가 유일한 정치적 목표가 돼 온갖 이질적인 사람들이 양당으로 모여든다. 제3당은 설 자리가 없다. 결과는 극한대립이다. 의원들이 저질이어서가 아니다. 나쁜 시스템 때문이다. 대안이 있다. 대통령을 배출하지 않아도 사안에 따라 정책연합을 통해 정파의 비전을 국가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거다. 그래야 제3당이 존립한다. 타협과 상생의 공간이 생기며 정치가 정상 작동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의회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오래 했다. 2010년 민주당 원내대표에 출마할 때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한 적도 있다.”

‘정치 생산성 회복’이 개혁의 요체

―내각제 개헌을 생각하고 있나.

“길게는 그렇다. 하지만 지금 ‘내각제로 가자’고 하면 국민 설득이 쉽지 않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먼저 의회 기능 활성화로 다당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6·4지방선거를 앞둔 현 상황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같은 문제의식과 접근법이 ‘타협의 정치’라는 안철수 의원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강봉균표 전략’이다.

―‘안철수 새 정치’가 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고 보나.

“안철수 정치의 요체는 대립과 갈등의 정치구도를 타협과 상생의 정치로 바꿔 정치의 생산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도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의회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법률 개정만으로도 검찰총장, 주요국 대사, 군 장성에 대해서는 국회 청문회가 아니라 임명동의제로 국회의 견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당내 민주화가 시급하며 이를 위해 상향식 공천제, 의원자율투표제 등을 확립해야 한다. 영호남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지자체 개편도 필요하다. 예컨대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은 동일 생활권이다. 주민 여론조사를 해보면 80%가 통합을 원한다. 여수 순천 하동 남해 권역도 마찬가지이다. 지자체의 선출직들이 반대 세력이다. 일각에서 ‘새 정치에 콘텐츠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새 정치의 내용이 될 것이다.”

―성공할 것 같은가.

“정상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이 있다. 이를 모아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디딤돌을 마련하고, 향후 총선 및 대선에서 중앙정치 개편을 하겠다는 것이다. 설혹 이번에 실패한다 해도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존 여·야당의 비생산적 행태가 스스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를 낭비할 순 없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은….

“공기업, 서비스, 규제, 노동시장 등에 대한 개혁이 당연히 들어갈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현재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취약하다. 평균 연봉 1억 원의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을 이유로 파업하면 상식적으로 비정상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미워하는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권은 약자 편든다며 노조를 비호한다. 공기업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도 ‘민영화해 재벌에 넘기는 것보다는 낫다’며 개혁을 가로막는다. 편 가르기만 해온 정치권의 악습이다.”

‘낙하산’ 금지가 공기업 정상화 첫발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개혁 대상 세력이 극렬 반발할 것이다. 그러면 정치권이 안 움직인다. 개혁에 필요한 예산 조정이나 법안 통과가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 국민이 각종 비정상의 실상을 알게 해야 한다. 여론이 움직이면 야당도 움직이고 국회가 움직인다. 코레일 파업이 좋은 예다. 국민이 실태를 알고 나니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나. 요즘 종합편성TV 덕분에 시사토론이 많아졌지만 소재의 90%가 정치다. 그것도 공적담론이 아니라 편갈라 하는 입씨름이 많다. 경제혁신 대토론이 필요하다. 언론의 협조를 유도해야 하며 ‘재미있는 경제토론’을 생산하기 위해 공직자들이 머리를 짜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비정상을 만들어 낸 큰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공기업을 개혁하려면 ‘낙하산 인사를 안 하겠다’고 먼저 공언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기득권을 움켜쥔 채 노조만 윽박지르면 될 일도 안 된다. 공기업에 부채를 떠안기면서 4대강 같은 정치사업을 추진한다든지, 전기요금을 억누른 잘못도 인정해야 한다. 현재 건전재정을 위협하는 주범도 재원 대책 없이 복지만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다.”

―작년 세수가 11조 원 구멍 났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

“내가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다. 참 걱정된다. 대통령은 작년 9월 기초연금 공약을 수정하면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조세와 복지의 적정 수준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다. 5월이면 2015년 예산편성이 시작된다. 현 정부의 3년차 예산이다. 재정에서의 모순을 어떻게 정돈할 것인지 대토론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안철수캠프#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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