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포츠 내셔널리즘 넘어선 안현수의 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한국 이름 안현수, 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 그제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남자 1000m 결승전에 나선 그는 1위로 골라인을 통과한 뒤 차디찬 얼음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러시아 관객들은 환호했으나 TV 중계를 지켜보던 한국인의 마음은 착잡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지 8년 만에 러시아 선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안 선수가 사랑한 빙판은 그 험난한 여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첫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이자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 두 나라 국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주인공이 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식 페이스북에도 등장하면서 일약 영웅이 됐다. 키 170cm, 몸무게 65kg. 다른 선수에 비해 왜소한 체격과 전성기를 넘긴 29세의 나이에 거둔 빛나는 결실이었다.

16세에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통해 쇼트트랙의 황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2년 앞둔 시점에서 무릎 부상을 입은 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선수 생활을 접을 위기를 맞으면서 2011년 낯설고 물선 러시아로 귀화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치에서 1500m 동메달에 이어 금메달을 따 물심양면으로 재기를 도운 러시아에 보답했다.

안 선수의 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보고에서도 거론될 만큼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 그가 과연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국 빙상계 파벌 싸움의 희생양인지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안현수의 선전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4년 뒤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라도 체육계 부조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국적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올림픽이 국가와 민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이긴 해도 세계화 시대, 자신의 꿈을 찾아 더 넓은 무대로 뻗어나가는 젊은 세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국내에서도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와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 등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있다. 우리 국민은 러시아 유니폼을 입은 안 선수에게 열띤 성원을 보내고 있다.

안 선수는 피나는 노력으로 부상을 딛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달렸고 기술적으로 원숙해졌다. 태풍처럼 몰아친 시련 앞에서 좌절하지 않은 투혼(鬪魂)의 승리다. 돌아온 황제, 빅토르 안의 재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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