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미술품을 고르는 나만의 감별법이 있다.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고 징소리의 여운처럼 긴 울림을 남기는,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이라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내가 아는 한 종이학, 그것도 검은 종이학을 이토록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양대원 작가에게 하필 왜 검은 종이학을 그렸는가? 물었을 때 뜻밖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학창 시절 종이학을 접으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던 청춘 남녀들을 보았다. 그러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속의 허무함은 검은 종이학, 순수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초록색 풀을 빌려 전달하고 싶었다. 종이학을 접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지를 광목천에 배접한 화폭에 송곳으로 종이학의 형태를 새긴 다음 검은색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아교를 섞은 토분을 화폭에 발랐다.
깨끗한 면천으로 정성껏 표면을 닦으니 송곳으로 파인 부분과 한지의 미세한 결 사이로 토분이 스며들면서 추억처럼 아련한 검은 종이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의 소설가 막스 밀러는 ‘독일인의 사랑’에서 사랑의 의미를 이렇게 물었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던 사랑의 옹달샘에는 겨우 몇 방울의 물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이 몇 방울의 물을 아직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뜨거운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자신을 소모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 자기만 생각하는 절망적인 사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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